37도, 38도. 이 숫자는 더 이상 뉴스 속 숫자가 아니다. 도쿄의 여름은 지금, 매일매일이 ‘기록 갱신’ 중이다. 단순히 더운 게 아니다. 아스팔트 위를 걷는 순간, 마치 몸 전체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 신발 밑창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 자전거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느낌. 그렇게 도쿄의 여름은 모든 감각을 통해 몸에 새겨진다.
이런 날씨에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일본의 여름 풍경을 떠올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양산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양산은 주로 나이 든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거리 곳곳에서 가볍고 얇은 경량 양산을 쓴 사람들이 눈에 띄고, 그중엔 남성들도 있다.
그렇다. 이제는 남자도 양산을 쓴다. 특히 자켓과 셔츠를 벗을 수 없는 영업사원들, 바깥을 오가는 직장인들에게 양산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생존의 수단이 되었다. 자외선 차단제는 기본이고, 피부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요즘, ‘남자가 양산을 써도 괜찮다’는 인식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
밖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선풍기 달린 조끼도 일상이 되었다. 처음 보면 웃음을 자아낼 만큼 뚱뚱해 보이는 이 작업복은, 실은 안에 소형 선풍기가 들어 있어 내부에 바람을 불어넣어준다. 바람 한 점 없는 도심 한가운데서 이 선풍기 조끼는 ‘움직이는 그늘’처럼 느껴질 정도다.
나 역시 한여름을 견디기 위해 늘 양산을 챙긴다. 그리고 팔토시는 필수다. 의외로 팔은 햇볕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부위 중 하나다. 자외선으로 인한 착색, 화상, 장기적인 피부 손상까지 감안하면, 자외선 차단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물리적인 차단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손선풍기를 드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얼굴이 너무 건조해지는 느낌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양산 아래서 나는 바람과 그늘로 더위를 식힌다. 한번 양산을 써 보면 알게 된다. 그것이 단순한 패션 소품이 아니라 여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구’라는 것을.
일본에는 ‘우치미즈(打ち水)’라는 전통도 있다. 아침이나 해질 무렵, 집 앞이나 골목에 물을 뿌리는 풍습이다. 단순히 먼지를 가라앉히는 게 아니라, 증발열 효과를 통해 열기를 식히는 지혜다. 물론 지금의 수돗물은 한낮에는 따뜻할 정도로 달아오르지만, 그래도 그 물을 뿌리는 행위 자체가 마음을 조금은 식혀주는 듯하다.
무더위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여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제목만 보면 어색하고 낯설었던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막상 보면 꽤 괜찮은 콘텐츠였던 것처럼, 남성의 양산도 써보면 생각이 바뀐다.
한 번 써보자. 그리고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자. 이 여름, 당신에게도 양산 하나쯤은 필요하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