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일본에 살면서 인상 깊었던 것 중 두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음식과 화장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음식은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작용하는 부분이라 치더라도, 화장실만큼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체감하게 되는 영역이다.
특히 일본에서 살다 보면 공공시설의 화장실조차 일정 수준 이상의 청결과 편의성이 보장된다는 점에 익숙해진다. 백화점처럼 시설 관리가 철저한 곳뿐 아니라, 전철역이나 공공건물, 심지어 열차 내부에도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은 일본 생활의 숨은 강점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전철을 이용했을 때, 일반 승객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어 직원에게 물었더니, 비상용 열쇠를 꺼내 직원용 화장실로 안내해 준 일이 있었다. ‘이용자를 배려한 공간’이 아닌 곳에서 느낀 불편함 덕분에, 일본의 공공 화장실 시스템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실용적인지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의 공중화장실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따뜻한 변좌나 자동 세정 기능도 눈에 띈다. 겨울철 외국의 공공 화장실에서 차가운 변기에 앉는 순간, 일본의 일상적인 디테일이 얼마나 특별한지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감탄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여성용 화장실에 설치된 생리용품 전용 쓰레기통이다. 손을 대지 않고 센서에 손을 가까이 대면 뚜껑이 자동으로 열리고, 사용한 물품을 버리면 그 쓰레기는 내부에서 다시 닫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도록 처리된다. 내가 버린 쓰레기도 바로 가려지고, 다음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된다. 이 작은 구조물 하나에 담긴 배려와 기술은, 일본 화장실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스타킹을 갈아 신을 수 있는 받침대, 아기를 잠시 앉혀놓을 수 있는 의자, 문 안쪽의 가방 걸이, 소리 조절 장치 등, 각기 다른 상황에 놓인 사용자를 위한 배려가 구석구석 녹아 있다.
화장실은 단순히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사회가 ‘일상’을 얼마나 존중하고 배려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적 지표다.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유명한 관광지 외에도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눈여겨보길 권한다. 아주 평범한 그 공간 안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