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평일 저녁이나 수업이 없는 휴일이면 나는 으레 동네의 작은 펍(Pub)으로 향하곤 했다. 영국 시골의 펍은 한국의 생맥주집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더 느리고 따뜻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오래된 나무 의자와 삐걱거리는 바닥, 사람들의 낮은 웃음소리,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흑맥주의 향기까지…. 그곳에는 바쁜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나는 늘 한 잔에 1파운드 하는 흑맥주를 시켜 놓고 두세 시간씩 자리를 지켰다. 유학생들 누군가는 “이 맥주가 원래 홉을 너무 태워버리는 바람에 우연히 만들어졌대.”라며 아는 체를 했고, 누군가는 영국 생활의 외로움을 이야기했다. 또 어떤 이는 서툰 영어 때문에 겪었던 실수담을 꺼내며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 유학생들의 안주는 맥주가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였다.
신기한 것은 영국 사람들의 술 문화이다. 흔히 서양 사람들은 술을 엄청 마실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두세 잔 정도를 천천히 마시며 술보다 대화를 즐겼다. 정치 이야기, 날씨 이야기, 축구 이야기, 때로는 철학 같은 이야기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 이런 문화 속에서 007 시리즈, 반지의 제왕 같은 상상력 넘치는 영화도 나오고, 시대를 앞선 발명품들도 탄생하는 것이었겠구나.’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엉뚱한 상상도 웃으며 받아주는 분위기. 어쩌면 그것이 영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운이 좋은 날이면 이동식 노래방 기계가 펍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지금이야 노래방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1파운드를 넣으면 세 곡까지 부를 수 있었는데, 술기운을 빌려 쑥스러운 듯 마이크를 잡았다. 어떤 날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기도 했다. 낯선 나라의 사람들이 음악 하나로 친구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한국 노래는 없었다. 대신 대학 시절 흥얼거리던 팝송이 나오면 괜히 반가워 따라 불렀다. 현지인들이 부르는 익숙한 멜로디를 듣고 있노라면, 이상하게도 한국의 친구들과 캠퍼스 풍경이 떠오른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참 묘해서, 전혀 다른 나라의 노래 속에서도 고향 냄새를 찾아낸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영국의 날씨는 정말 소문 그대로이다. 늘 흐렸고, 해를 보는 날보다 잿빛 하늘을 보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영국 사람들은 날씨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오늘은 비가 올 것 같군.” “아니야, 오후엔 갤 거야.” 그들에게 날씨는 단순한 기후가 아니라 하루를 여는 인사였다. 문득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밥 먹었니?”라고 안부를 묻지 않았던가. 먹고사는 일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시절의 흔적이 인사말에 남아 있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의 말 속에는 결국 그 나라의 삶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도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영국에서의 네 번째 휴일을 맞고 있었다. 특별히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늘 가던 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낯익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국말이었다. 순간 가슴이 떨렸다. 지구 반대편, 머나먼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듣게 된 한국말이라니. 너무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거의 달려가다시피 하며 인사를 건넸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그들도 환하게 웃으며 자리 하나를 내주었다. 우리는 오래전 친구를 만난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영국에는 왜 왔는지….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에서 연수 파견을 나온 젊은 직원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기업에서는 매년 경력 10년 정도의 직원들 가운데 40명 정도를 선발해 세계 각국으로 2년씩 보낸다고 했다. 특별한 임무도 없고, 그 나라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며 문화를 배우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된 과제라고 했다. “2년 뒤에 간단한 보고서만 내면 끝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도 넉넉하지 않은데, 사람을 그냥 세계 곳곳에 보내 경험하게 한다고?’ 당시의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기업은 이미 먼 미래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경험한 젊은이들이 결국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름까지 높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진짜 큰 사람은 눈앞의 이익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먼저 본다는 것을.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그 젊은이들이 꺼낸 한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얼마 전 그들이 스코틀랜드의 Edinburgh에 ‘타투(Tattoo)’라는 군악 행진 공연을 보러 갔었다고 했다. 그런데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숙소 예약을 하지 못해 작은 민박집을 찾아갔는데, 뜻밖에도 주인이 한국 사람에게는 방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 황당해 이유를 물었더니 얼마 전 한국인 손님들이 예약 규칙을 지키지 않아 큰 소동이 있었고, 그 뒤로 한국 사람은 받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한 방에 한 명씩 예약해놓고 두 사람이 함께 숙박하려 했고, 밤 10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규칙도 어긴 채 11시가 넘어서 큰 소리로 문을 두드리며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 정도야 사정 설명하면 되지 않나?” 싶었다. 한국에서는 충분히 협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마음 한구석이 점점 싸늘해졌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 사고를 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유학생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너무도 비슷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인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날 처음 절실히 느꼈다. 우리는 한 사람의 행동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작은 실수가 ‘한국 사람들’이라는 이름 전체로 남는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 사람들 앞에서 차마 “그게 우리였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외국에서의 한 사람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조국의 얼굴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무거운 책임감은, 흐린 영국 하늘 아래 마셨던 쓰디쓴 흑맥주보다 더 오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영국 유학기 6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