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도미노 현실화

한국 근·현대사는 교육을 국가 생존 전략으로 삼아왔다. 자원과 산업 기반이 취약했던 시절, ‘교육만이 가난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확신 속에 이른바 ‘국가교육백년대계’가 추진됐다. 그러나 1980~1990년대를 거치며 저출생과 인구 구조 변화가 본격화되면서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중등학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폐교 도미노’가 현실화하고 있다. 학교의 소멸은 지역 공동체의 위축과 국가 경쟁력 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농산어촌은 물론 중소도시와 대도심에서도 학생 수 급감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예견된 흐름이었지만, 학교 시설과 부지 활용에 대한 중장기 전략은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당수 폐교는 매각이나 임대, 단기 문화공간 전환 등에 그치며 지역 재생의 거점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는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 정체성이 축적된 공간”이라며 “방치될 경우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교실 내부 모습, 검은 판과 책상, 조각상 있는 선반이 보인다.

일본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폐교 증가를 일찍이 경험하며 체계적인 전환 모델을 구축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민관이다. 공민관은 주민 자치와 평생학습을 지원하는 지역 거점 시설로, 폐교나 유휴 공공시설을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시민회관, 평생교육원, 지역센터 등으로 기능을 전환해 문화·복지·교육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고 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통상 10년 단위 공공시설 재편 계획을 수립해 인구 추계, 재정 여건, 지역 수요를 반영한 중장기 활용 방안을 마련한다. 단순 매각보다 ‘공공성 유지’와 ‘지역 거점화’를 우선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지역에서는 폐교를 노인 복지시설, 돌봄센터, 다세대 교류 공간으로 재구성해 세대 통합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 지역은 스타트업 입주 공간이나 예술 창작촌으로 전환해 청년 유입을 유도하는 등 지역 활성화 전략과 연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폐교를 단순 처분 대상이 아닌 지역 미래 자산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예술 공간, 체험학습장, 사회적경제 기업 입주 공간 등으로 활용 사례가 나오고 있으나, 전국적 차원의 체계적 로드맵은 미흡한 상황이다. 향후 10년을 내다본 활용 방안으로는 공공 돌봄·평생교육 복합센터 조성, 청년 창업·귀촌 지원 허브 구축,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직업교육 플랫폼 운영, 다문화·고령화 대응 통합 커뮤니티 공간 조성 등이 거론된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폐교 활용 기본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교육을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는 학교의 ‘존치’만이 능사가 아니라, 공간의 ‘재해석’과 ‘재설계’가 요구된다. 일본의 공민관 모델처럼 폐교를 지역 공동체 회복의 거점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여부가 향후 10년 지역 균형 발전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교육백년대계로 시작된 학교가 인구 감소 시대에 또 다른 백년을 준비할 수 있을지, 정책적 상상력과 실행력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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