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 소낙비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이면, 세상은 조금 낮은 목소리로 숨을 쉰다. 노랑 우산 하나, 파랑 우산 하나 그리고 살이 삐져나와 가장자리가 너덜거리는 찢어진 우산 하나. 셋이 나란히 좁은 골목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젖는다. 우산들은 서로의 이마를 맞댄 채, 어깨를 부딪치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비를 막기 위해 펼쳐졌지만, 사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모여든 것처럼 보인다. 

퇴근 무렵, 예고 없이 소낙비가 쏟아진다. 교무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한다. 집으로 가야 하는 시간인데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세며, 비를 피해 이리저리 뛰어가는 사람들의 잔상을 눈 안에 담는다. 문득 꿈많던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른다. 소년과 소녀가 비를 맞으며 서 있던 그 들판의 냄새, 젖은 흙의 온기 그리고 차마 말로 다 건네지 못한 마음. 어릴 적 운동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불렀던 동요 ‘이슬비’도 함께 스쳐 간다.

비가 내리는 창문 너머의 풍경과 화분의 모습

가늘게 내리는 비는 늘 조용한 추억을 데려오지만, 나는 솔직히 이슬비보다 소낙비를 더 좋아한다. 오늘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특히 좋아한다. 소낙비는 오랫동안 쌓아둔 더위를 한 번에 토해내듯 쏟아진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날들을 지나, 하늘이 머금을 수 있는 만큼의 수증기를 꾹꾹 눌러 담았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한꺼번에 풀어놓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나와 닮았다. 말수가 적고, 속으로 삼키는 데 익숙한 나는 늘 참고 또 참는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있다가도 마음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치솟는다, 소낙비처럼. 그래서 나는 갑작스러운 빗줄기를 좋아한다. 하늘이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서.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한 말들을 나 대신 소낙비가 쏟아내 주는 것 같아서. 소나기가 쏟아질 때면 파란색 비닐우산이 그리워진다. 몇 번 쓰다 보면 우산살이 삐져나와 가난한 집 지붕처럼 펄럭이던 그 우산. 바람이 불면 자락이 흔들리고, 빗물이 고였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던 투명하고 허술한 비닐. 우산 안쪽에서 올려다보던 하늘은 늘 푸르스름하게 일렁였었다. 방울방울 맺힌 빗방울 사이로 세상은 조금 왜곡되어 보였고, 그 왜곡이 오히려 아름다웠다. 그리고 비닐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참 좋았다. 톡, 톡, 또르르, 철썩. 걸음마다 우산에서 나는 소리와 내 발소리 그리고 빗소리가 한 박자로 어우러질 때면 나는 이상하게도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학창 시절, 가슴이 쿵 내려앉도록 좋아했던 여학생과 찢어진 비닐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걷던 하굣길. 우산은 작았고, 빗물은 옆구리로 스며들었지만, 그날의 공기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나는 끝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혹시라도 심장 뛰는 소리가 들킬까 봐 괜히 땅만 바라보며 걸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녀의 집은 왜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던지. 조금만 더 멀었더라면, 소낙비가 조금만 더 길게 쏟아졌더라면, 어쩌면 한마디쯤은 건넬 수 있었을지도 모른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우산보다 마음이 더 많이 낡아버린 나이가 되었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여전히 창가에 서서 빗방울을 센다. 이슬비는 조용히 추억을 데려오고, 소낙비는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린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때 그 찢어진 우산 아래에서 말없이 서 있던 소년이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비를 맞으며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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