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서 가장 큰 후회는 종종 너무 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더 잘해 드릴 걸, 더 자주 찾아뵐 걸, 더 따뜻하게 대해 드릴 걸 이라는 아쉬움은 부모님이 떠나신 뒤에야 깊이 와닿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할 기회는 생각보다 짧고,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첫 스승이자 가장 큰 보호자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를 품에 안아 주셨고 아플 때 밤새 걱정하며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부모님께 과연 무엇을 돌려드렸을까요? 물론 후회없이 보답한 분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요.’, ‘조만간 찾아뵐게요.’, ‘효도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런 핑계는 정작 부모님이 떠나신 뒤 의미 없는 후회로 남을 뿐입니다. 부모님께서 우리의 무심함으로 인해 느끼셨을 외로움과 서운함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깊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정성스레 마련한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과 마음이 아닐까요?
보통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라는 후회는 마음속에 깊이 남아 평생의 짐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빈자리는 누구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은 재산이나 성공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놓친 일이라고들 합니다. 그중에서도 부모님과의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할 시간입니다. 부모님께 효도는 거창하거나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전화 한 통, 방문 한 번, 따뜻한 미소와 사랑의 말 한마디가 그 시작일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더 미루지 말고 지금 효도를 실천하세요.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날, 그 빈자리는 결코 메워지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며 눈물 흘리기 전에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그분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효도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자,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엄마는 여기 남고, 나는 안동으로 갈 거다. 너는 누구 따라갈래?”
“엄마요!”
“….”
“그러면 내가 여기 남고, 엄마가 안동으로 가면 누구랑 살래?”
“엄마요….”
“….”
슬픈 표정으로 마음속의 눈물을 흘리시며 하늘만 바라보던 아버지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들어 아버지의 눈물이 자꾸만 떠오릅니다다. 우리 집은 읍내에서 버스로 두 시간을 꼬불꼬불 들어가서 다시 산길을 한 시간이나 걸어야 도착하는 하늘 아래 끝 동네였습니다. 나는 십 형제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여덟 명의 형들은 모두 도시로 공부하러 떠나고 집에는 나와 동생,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네 식구가 머슴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특용작물 위주의 요즘 농사와 달리 당시는 논농사 뿐이라 가을이면 일이 모두 끝이 납니다. 어른들은 겨울 동안 휴식을 취하십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이웃집 사랑방에서 동네 어른들과 밤을 새우시고 아침 식사 자리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참을성이 한계에 이르면 늘 내가 아버지를 모시러 가곤 했습니다.
“아부지! 어무이가 아침 드시라 카는데요?”
“….”
웃고 떠드는 주변 어른들의 소리에 아버지는 내 말을 듣지 못했나 봅니다. 한 번 더,
“아부지! 어무이 진짜 열받았다 카이요! 퍼뜩 가이시더!”
그래도 아버지는 반응이 없으십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어른들은 사랑방에 모여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십니다. 돈을 모아 주전부리를 하며 내년 농사 준비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는 일을 하시거나 화투를 즐기십니다. 겨울이 되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주 다툽니다. 멍석도 짜고, 가마니도 짜고, 새끼도 꼬아야 내년 농사를 할 수 있는데 사랑방에만 계시는 아버지가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늘 나를 보내지만 아버지는 듣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밤을 새우시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들어오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의 잔소리에 아버지는 우리 두 형제를 불러 놓고 누구와 살 것인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냥 울고만 있을걸,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있을 걸. 너무 빨리, 너무 강하게 엄마와 살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어른이 되고서야 후회했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슬퍼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이상하게도 다른 해보다 많이 다투시던 그해 겨울, 어머니는 아프시기 시작해 이듬해 내가 5학년이 되던 여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땐 어머니가 이 세상에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 느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른이 되고서야 가슴이 미어지도록 답답해지고 자주 눈물이 쏟아집니다.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릴 걸, 그 때 왜 그랬을까 바보처럼. 그 해는 유독 어머니와 아버지가 많이 싸우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서로 정을 떼시려고 그러셨던 것 도 같습니다. 옛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셨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5일장으로 치렀습니다. 나도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관을 땅속에 넣을 때서야 아버지는 목 놓아 우셨습니다. 그동안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며 ‘곧 따라갈테니 기다려.’ 라고 하시며 맨손으로 땅만 긁으셨습니다. ‘나를 두고 뭐가 그리 바빠 이렇게 혼자 야속하게 훌쩍 가느냐!’며 하염없이 가슴만 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어른도 울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도 눈물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아버지를 따라 쓰러질 때까지 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