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육성·조직 쇄신·재정 자립·신정주자 포용 시급…기념행사 넘어 실질적인 변화 요구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이 창단 80주년을 맞았다. 1946년 10월 3일 출범한 민단은 지난 80년 동안 재일동포의 권익 보호와 민족 정체성 유지, 대한민국의 발전, 한일 우호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창단 80주년을 맞은 오늘날 민단이 직면한 현실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재일동포사회의 고령화와 세대교체, 일본 국적 취득자의 증가, 새로운 한국인 정주자의 유입, 청년층의 조직 참여 감소 등은 민단의 존재 방식 자체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민단은 지난 7일 서울에서 창단 8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창단 기념식이 열린 것은 처음이다. 행사에는 한일 양국 관계자와 일본 각지에서 방문한 민단 관계자 등 약 600명이 참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민단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재일동포들이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역사를 평가했다. 특히 변화하는 재일동포사회가 세대와 배경을 넘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도록 민단이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김이중 민단 중앙본부 단장은 한일 우호 증진, 차세대 정체성 계승, 세대와 정주 형태를 초월한 열린 동포사회 구축을 향후 주요 방향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이러한 선언을 어떻게 구체적인 조직 개혁과 사업으로 연결하느냐다.
고령화된 조직, 차세대 참여가 생존의 관건
민단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차세대 육성이다.
민단의 조직 기반은 오랫동안 재일동포 1세와 2세,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해 온 기존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나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과거와 같은 민족적 유대감이나 조직에 대한 소속감만으로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워졌다.
특히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일본 사회에서 교육과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젊은 세대에게 민단이 어떤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한국어 교육과 전통문화 행사도 필요하지만, 청년들이 실제로 관심을 갖는 취업과 창업, 국제교류, 진로 상담, 장학사업, 전문직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차세대를 단순히 행사에 동원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조직 운영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로 인정하는 변화도 요구된다.
신정주자와 기존 동포사회의 통합
민단의 또 다른 과제는 재일동포사회의 다양성을 조직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과거 재일동포사회는 식민지 시기와 해방 전후 일본에 정착한 동포 및 그 후손들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유학생, 기업인, 전문직 종사자, 국제결혼 가정 등 다양한 배경의 한국인들이 일본에 정착하면서 동포사회의 구성도 변화했다.
이른바 올드커머와 뉴커머 사이에는 일본 정착 시기뿐 아니라 언어, 생활환경, 사회적 관심사,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민단은 재일동포 전체를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라 일부 세대와 지역에 기반한 단체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신정주자 출신 인사의 조직 참여와 지도부 진출을 확대하고, 일본 국적을 가진 한국계 주민 및 다문화 가정과의 교류 방식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다만 국적과 법적 지위에 따라 회원 자격이나 선거권 등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조직의 정체성과 규약을 존중하면서 참여의 폭을 넓히는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
지방조직의 약화와 재정 자립 문제
민단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또 하나의 문제는 조직 운영과 재정이다.
민단 중앙본부는 이미 2025년 조직 운영과 관련해 재정과 인력, 차세대 문제의 심각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일부 지방조직은 존속 자체가 우려되는 상황이며 중앙본부 직원 수도 과거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예산 부족을 넘어 조직 운영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회원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조직 규모와 운영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 지역별 사업 수요를 분석하고 인력과 시설의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재정 문제 역시 회비와 후원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공익사업의 투명한 회계 관리, 외부 감사, 사업별 성과 평가 등도 조직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중앙본부와 지방본부, 지부 사이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사업의 중복을 줄이는 구조조정 논의가 요구된다.
재일동포의 생활권 보호,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과제
민단은 지난 80년 동안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개선과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외국인 주민의 정치적 참여, 사회적 차별, 혐오표현, 교육과 복지 접근성 등 다양한 문제가 남아 있다.
특히 재일동포 고령자의 돌봄과 의료, 독거노인 지원, 상속과 생활법률 상담 등은 앞으로 중요성이 더욱 커질 분야다.
젊은 세대에게는 취업과 창업, 주거, 자녀 교육 등 현실적인 생활 문제가 중요하다.
민단이 지역사회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려면 기념식과 문화행사 중심의 활동뿐 아니라 생활밀착형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다문화 공생 정책에 참여하고, 한국계 주민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와 교류하는 공익적 역할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민족교육과 정체성 계승의 새로운 접근
민족교육은 민단의 역사적 역할 가운데 하나다.
한국어와 한국문화, 재일동포의 역사에 대한 교육은 다음 세대가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그러나 정체성 교육을 단순히 한국어 구사 능력이나 한국 국적 유지 여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일본어를 주로 사용하는 재일동포 후손도 자신의 가족사와 한국계 뿌리를 이해하고 한일 양국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민족교육은 한국어 교육과 함께 재일동포의 이주사, 차별 극복의 역사, 한일관계, 다문화 공생 등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교육과 청소년 교류, 한국 방문 프로그램, 장학제도 등을 연계하는 장기적인 교육체계도 검토할 만하다.
한일관계의 가교, 정치적 선언보다 시민사회 교류가 중요
민단은 한일관계가 악화할 때마다 양국 사이에서 민간외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역사 문제와 외교 갈등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재일동포사회는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앞으로의 민간외교는 정부 관계자 초청 행사나 의례적인 교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일 청년 교류와 지방자치단체 협력, 대학과 연구기관의 공동사업, 문화·경제 분야의 실질적인 네트워크 구축 등이 필요하다.
재일동포들이 양국 사이에서 축적해 온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한다면 민단은 한일관계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민사회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민단 100년을 위한 조직 혁신, 지금 시작해야
민단 창단 80주년은 과거의 성과를 기념하는 동시에 앞으로 20년의 생존 전략을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회원 구성과 연령별 분포, 지방조직의 운영 실태, 재정 상황, 청년 참여율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민단이 추진해 온 미래 비전 연구 역시 선언적 구상에 그치지 않고 실행 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중앙본부와 지방본부의 역할 재정립, 청년 지도자 양성, 신정주자 참여 확대, 재정 투명성 강화, 지역사회 공익사업 확대 등 구체적인 과제를 설정하고 추진 성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재일동포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한 역사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동포사회의 현실에 맞춘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이중 단장이 창단 80주년을 맞아 재일동포와 민단의 역사를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평가와 계승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적 공헌에 대한 인정만으로 민단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민단이 지난 80년 동안 재일동포의 권익을 지키는 울타리였다면, 앞으로의 20년은 국적과 세대, 정주 배경의 차이를 넘어 동포사회를 연결하는 열린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할 시기다.
창단 80주년이 남긴 가장 큰 과제는 민단의 역사적 정통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변화한 재일동포사회가 앞으로도 민단을 필요로 하도록 어떤 역할을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있다.
민단의 100주년은 2046년이다. 그때 민단이 어떤 조직으로 남아 있을지는 80주년 기념식의 규모가 아니라 지금부터 추진할 개혁의 성과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