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상과 학습 현장에 빠르게 파고들면서 전통적인 읽기·쓰기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김성우 캣츠랩 연구위원은 AI가 글쓰기의 효율을 높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문 독해와 사유의 과정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짚었다.
김 연구위원은 지난 2월 26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열린 미디어오늘 ‘미디어 먼슬리’ 강연에서 ‘AI의 시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를 주제로 이같이 말했다. 행사 공지와 관련 보도를 보면 이날 강연은 응용언어학자인 김 연구위원의 발제와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김 연구위원은 학생들이 생성형 AI의 요약 결과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오리지널 정보를 거의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AI 요약은 완벽하지 않고, 데이터에 없거나 애매한 질문에는 잘못 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성형 AI 의존이 사고 과정 자체를 바꾼다고 봤다. 과거에는 자료를 읽고 이해한 뒤 글을 쓰는 순서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AI에 자료를 넣고 곧바로 결과물을 받아보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 흐름을 두고 “전통적인 글쓰기는 읽기에서 쓰기로 이어졌지만, 생성형 AI 기반 글쓰기는 쓰기에서 읽기로 방향이 바뀐다”며 “결국 사람들의 읽고 쓰기에 대한 관심이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공개된 MIT 미디어랩 계열 연구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 해당 연구는 참가자 54명을 AI 사용 집단, 검색엔진 사용 집단, 무도구 집단으로 나눠 SAT 스타일 에세이 작성 과제를 수행하게 했고, AI 사용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뇌 활동과 기억·인지적 관여 저하가 관찰됐다고 보고했다. 다만 이 연구는 아직 동료평가 전 단계라는 점에서 해석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김 연구위원은 결과물 중심 평가의 한계도 강조했다. 생성형 AI로 만든 글은 겉보기엔 그럴듯할 수 있지만, 정작 작성자가 자신의 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소유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과물만 갖고 평가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며 “과정에서 어떤 생각이 일어났는지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AI가 업무 시간을 줄여줄 것이라는 통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 연구위원은 생성형 AI를 많이 쓸수록 오히려 관리 업무와 추가 요구가 늘어나 노동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기업 현장을 추적한 연구와 대규모 디지털 업무 분석에서도 AI 도입 이후 처리해야 할 과업과 멀티태스킹이 늘고, 집중 업무 시간은 줄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 연구위원은 기술 변화의 속도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 삼았다. 그는 “생물학적 진화의 속도와 기술적 진화의 속도는 차이가 크다”며 “사회는 열심히 하면 누구나 따라갈 수 있고, 못 따라가면 개인 탓이라고 주입하는데 그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 기본사회’의 조건으로 비사용자에 대한 비차별을 제시했다. 그는 “모든 국민을 위한 사회라면 AI를 쓰지 않는 사람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며 “AI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되, 그렇지 못해도 서러움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