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8억 시간 쓴 한국, 돈은 실리콘밸리로…‘활용 강국’의 역설

2025년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공지능(AI) 활용 국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성과의 대부분이 국내 기업이 아닌 미국 실리콘밸리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벤처캐피털 a16z의 ‘Top 100 생성형 AI 소비자 앱’,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센서타워의 ‘State of Mobile 2026’, 한국은행의 ‘AI의 빠른 확산과 생산성 효과’ 보고서를 종합 분석한 결과, 한국은 ‘AI 활용 강국’이지만 ‘AI 산업 주도국’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났다.

센서타워에 따르면 2025년 한국 사용자가 생성형 AI 앱에서 보낸 시간은 약 8억 시간으로, 2024년 대비 450% 늘었다. 세션 수는 약 18조 건에 달했다. 단순 체험을 넘어 AI가 일상적인 업무와 생활 도구로 자리잡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시간의 수혜자는 대부분 외국 기업이었다.
2025년 한국 다운로드 상위 AI 어시스턴트 앱 10개 가운데 1위는 오픈AI의 챗GPT, 2위는 구글의 제미나이로, 국내 기업 앱은 뤼튼(3위)과 SK텔레콤의 에이닷(7위) 두 개뿐이었다. 퍼플렉시티와 그록 등 나머지 대부분은 미국 기업 서비스였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a16z가 발표한 ‘Top 100 생성형 AI 앱’ 명단에서 한국 기업이 만든 서비스는 네이버의 B612, 스노우, 번역 앱 파파고 등 단 세 개뿐이었다. 이들 역시 모바일 시대부터 존재했던 앱이 AI 기능을 추가한 형태였다. 순수한 생성형 AI 기반 신서비스는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격차 그 자체보다 구조적 불균형이다.
AI 플랫폼은 ‘사용-데이터-성능’의 선순환 구조를 가진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모델의 품질을 높이며, 성능 향상이 다시 사용자 증가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메일, 일정, 문서 작업 등이 연동되면서 생태계 잠금(락인) 효과가 발생한다. a16z는 이를 ‘앱 디렉터리·커넥터 플라이휠’이라 정의했다.

한국 사용자의 8억 시간과 18조 세션은 결국 글로벌 플랫폼의 학습 데이터와 수익으로 전환됐다.
과거 인터넷·모바일 시기에는 한국 트래픽이 네이버와 카카오로 축적돼 국내 ICT 산업 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AI 혁명기에는 그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데이터와 이용 시간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전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기술 환경의 변화가 있다.
언어·문화 장벽이 강했던 인터넷 시기와 달리, 생성형 AI 시대에는 이런 경계가 사라졌다. 챗GPT 출시 초기부터 한국어 처리 능력이 자연스러웠고, 앱스토어·구글플레이 결제를 통해 글로벌 매출로 바로 연결됐다.

시장 격차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네이버는 자체 대형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2023년 출시한 대화형 AI ‘클로바X’를 오는 2026년 4월 9일 종료한다고 밝혔다. 한국어 특화 전략이 글로벌 표준 모델과의 경쟁에서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결국 한국은 AI를 가장 빠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됐지만, 그로부터 발생하는 데이터와 수익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한국인이 생성AI 앱에 쏟아부은 8억 시간의 결과물이 실리콘밸리 기업의 성장 지표로만 남는다면, 한국은 인터넷과 모바일에 이어 AI 혁명에서도 ‘소비자 국가’로 머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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