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최준례 여사 묘비, 한글 비문에 담긴 뜻과 시대적 의미

1924년 중국 상하이 공동묘지에서 촬영된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사진에는 백범 김구 선생 가족과 함께 최준례 여사의 묘비가 담겨 있다. 이 자료는 한글 비석으로서 희소할 뿐 아니라, 당시 독립운동가 공동체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다.

사진 속 인물들의 배치는 다음과 같다. 모자를 쓴 뒤쪽 왼쪽 인물이 남편 백범 김구다. 가운데 뒤에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이자 최준례 여사의 시어머니인 곽낙원 여사가 서 있다. 앞쪽 오른쪽 큰 아이는 장남 김인이고, 왼쪽 작은 아이는 차남 김신이다. 김신은 훗날 대한민국 공군에서 제6대 참모총장을 역임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묘비 비문은 상하이 거주 한글학자이자 임시정부 동지였던 김두봉 선생이 지었고, 글씨 또한 그의 손에서 나왔다. 눈에 띄는 점은 생년월일과 사망일 표기에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고 한글 자음 순서를 이용한 암호 같은 기법이 적용됐다는 사실이다. 당시 비문 중앙에는 “최 준 례 묻 엄”이라 표기돼 있다. 여기서 당시 사용된 ‘묻엄’은 ‘무덤’을 뜻하는 옛 표기다.

비문 왼쪽에는 “남편 김구 세움”이라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생몰년월일이 자음 순서 숫자로 암호화돼 새겨졌다. 자음 순서 ㄱ=1, ㄴ=2, ㄷ=3, ㄹ=4…을 대입하면 태어난 해가 단기 4222년, 즉 서기 1889년 3월 19일임을 알 수 있다. 사망일은 대한민국 단기 4286년 1월 1일, 곧 서기 1924년 1월 1일이다. 여기서 대한민국 표기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단기 1년으로 삼은 기산법을 따른 것이다.

최준례 여사는 1920년 아들 김인을 데리고 상하이로 망명했다. 피란의 고된 여정 속에서도 시어머니를 돌보고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을 뒷받침했지만, 열악한 환경과 건강 악화로 인해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병명은 늑막염과 폐병으로 전해진다. 여사의 묘비는 당시 상하이 동포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세운 것이다.

최준례 여사의 묘소에 세워진 한글 비석은 한글 서예사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아라비아 숫자 대신 한글 자모를 사용한 비문 표기법은 강한 민족정신과 애국적 정서가 깃들어 있는 사례로 주목받는다. 이번 사진 자료는 당시 독립운동가 가족의 삶과 한글문화의 실천적 의미를 되짚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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