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마련한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AI 액션 플랜)’이 조만간 확정·공표된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국이 AI를 국가안보와 산업 패권의 핵심 축으로 삼아 인프라와 규제를 포함한 종합 전략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도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본격적인 추격전에 나섰다.
이번 AI 액션 플랜의 핵심은 AI를 개별 기술이 아니라 국가 운영과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총체적 인프라로 규정한 데 있다. 과거 정책이 연구개발 지원이나 일부 산업 육성에 머물렀다면, 이번 로드맵은 인프라 구축, 산업 전환, 공공 서비스 도입, 규제 체계 정비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중심으로 범정부와 민간, 학계가 공동으로 실행안을 설계해 ‘선언’이 아닌 ‘실행’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AI 경쟁의 출발선은 인프라다. 그래픽처리장치(GPU), AI 컴퓨팅 자원, 데이터센터 확보가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미국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민간 주도의 GPU 확장을 이뤄냈고, 중국은 국가가 직접 인프라를 구축했다. 한국은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AI 컴퓨팅 자산을 만들고 이를 산업 전반에 개방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가 AI 컴퓨팅 센터, 대규모 GPU 클러스터, 메모리·네트워크·전력·냉각을 포함한 생태계 구축이 구체 과제로 담겼다. 대기업과 연구자뿐 아니라 스타트업, 중견기업, 공공기관까지 AI를 실제로 쓸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산업 전략도 차별화했다. 미국과 중국이 초거대 AI 모델과 플랫폼 경쟁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제조,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금융, 물류 등 이미 경쟁력을 가진 산업에 AI를 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형 대규모 모델’을 하나 더 만드는 데 집착하기보다, AI를 산업 현장에 적용해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거대 언어모델과 멀티모달 AI는 목적이 아니라 산업 적용을 위한 수단으로 본다. 생산성, 품질, 안전성,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정책의 핵심 목표다.
공공 영역 역시 주요 축이다. 행정 자동화, 복지·보건·교육 분야 AI 활용, 공공 데이터 개방과 활용 체계 도입이 포함됐다. 공공 부문을 AI 실증과 확산의 시험대로 삼아 단기적으로는 규제 안정성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전략이다. 올해부터 공공 분야에서 AI 활용이 확대되면, 국민 생활 속에 AI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민간 AI 시장 확대의 촉매가 될 전망이다.
규제 방식은 미국식 자율 모델과 유럽식 규제 모델의 중간 지점을 택했다. 국가안보, 개인정보 보호 등 고위험·고영향 영역만 선별적으로 규제한다. EU는 모든 AI 사업에 사전 승인 체계를 두는 인공지능법을 시행했고, 미국은 자율을 보장하되 문제 발생 시 강한 책임을 묻는 방식을 취한다. 중국은 당국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AI 사업을 추진한다. 한국은 이들 사이에서 현실적 균형을 선택했다.
AI 액션 플랜의 효과는 단기와 중장기로 나뉜다. 단기적으로는 GPU와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인프라 투자가 늘고, 반도체·전력·냉각·네트워크 산업 전반에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공공과 산업 현장에서 AI 도입 프로젝트가 급증하며 AI 인력 수요와 데이터 활용 시장도 빠르게 커질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모델 경쟁’이 아니라 ‘시스템 경쟁’에서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인프라, 산업 적용, 공공 수요, 규제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면, 초거대 플랫폼을 독점하지 않아도 AI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