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萬波息笛)은 신라 시대 전설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피리다. 이름 그대로 ‘온갖 물결과 근심을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을 지닌다. 전승에 따르면 신라는 신문왕 대에 이르러, 선왕인 문무왕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동해에 감은사를 세웠고, 이후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의 영혼과 연결된 신비로운 대나무를 얻어 이 피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만파식적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상징물로 인식됐다. 기록과 설화에서는 이 피리를 불면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외적의 침입 시에는 전쟁이 멎으며, 질병과 재앙이 사라진다고 묘사된다. 개인의 평안을 넘어 국가적 위기를 잠재우는 힘을 지닌 존재로 설정된 것이다.
이러한 서사는 신라가 왕권과 국가 질서를 초월적 권위로 정당화하던 방식과 맞닿아 있다. 만파식적은 왕이 하늘과 바다, 조상과 소통하는 매개체이자, 혼란의 시대를 평정하는 이상적 통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실재 여부를 떠나, 만파식적 전설은 신라 사회가 꿈꾸었던 ‘안정된 나라’의 집약적 표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