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교과서 논쟁에서 싱가포르를 예로 들어 한국의 정책 실패를 단정하는 주장들이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주장 상당수는 사실과 다르거나 맥락을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싱가포르에서도 핵심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교사가 어떤 수업관으로 AI를 활용했는가에 있었다. 도구 중심 수업이었는지, 사고력 중심 수업이었는지가 성패를 가른 요소였고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오해는 싱가포르의 교과서 체계가 한국보다 ‘유연하고 앞서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싱가포르는 민간 개발·검정 체제가 아니라 정부가 기획 방향을 정하고 출판사가 그 지침에 맞춰 개발하는 국정·인정 모델에 가깝다. 정부가 운영하는 디지털 교육자료 플랫폼도 한국의 에듀넷·e학습터와 유사한 구조다. 오히려 한국은 이미 이를 넘어 민간 플랫폼과 연계된 개방형 생태계로 확장한 상태다. 싱가포르가 앞서고 한국이 뒤처졌다는 비교는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주장이다.
AI 윤리 기준을 둘러싼 비교 역시 사실과 다르다. 싱가포르가 화이트리스트를 마련해 체계를 갖춘 것처럼 설명되지만, 한국은 2020년 국가 AI 윤리기준, 2022년 교육부 ‘AI 윤리원칙’, 지방교육청의 세부 지침, 2023년 AIDT 가이드라인 등 이미 여러 단계의 윤리 기준을 도입해왔다. 교사·전문가·기업이 함께 참여한 공동 개발 구조도 싱가포르 못지않게 정교하다. 단순 도구 목록 제시가 아니라 현장 검증과 수업안·산출물 공유까지 포함하는 체계는 한국이 더 발달해 있다.
교사 연수 시스템에 대한 ‘한국은 일회성, 싱가포르는 지속형’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싱가포르가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 연수를 운영하는 것은 맞지만, 한국은 이미 AIEDAP 기반 역량체계를 중심으로 창의재단·KERIS·교육청·민간이 참여하는 다층적 연수를 운영 중이다. 원격·집합·학교 방문 컨설팅, 전문적 학습공동체까지 구조가 촘촘하며 참여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이를 일회성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실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외국 사례를 절대화하고 한국을 과도하게 폄하하는 비교는 교육정책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AI 도구의 국적이나 브랜드가 수업의 우열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의 사고력을 어떻게 확장시키고, AI를 수업의 어느 단계에 배치하며, 학습 과정에서 어떤 철학을 적용하느냐가 교육의 품질을 좌우한다.
결국 논점은 기술이 아니라 교육철학이다. AI 시대라 해서 교사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사의 설계 역량과 수업관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교육에 필요한 것은 ‘외국 우월론’이 아니라 현장의 전문성과 교육철학을 중심에 둔 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