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션스쿨의 회식 문화 –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겪는 문화 충격이 두루마리 화장지(toilet paper)가 식탁 위에 굴러다니는 걸 볼 때라고 한다. 그들에게 화장지를 글자 그대로 화장실에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사용하던 화장지를 들고 와 식탁에 놓고 사용한다면 미국인은 물론 우리 한국 사람들도 당연히 불편할 것이다. 반면에, 한국 사람이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처음 겪는 불편한 문화 충격은 기분 좋게 식대를 계산하는데 세금이 따로 붙는다는 것이요, 더 큰 황당함은 원치도 않았는데 팁을 알아서 계산서에 넣어 청구한다는 것이다. 메뉴판에 적힌 금액만 지불하는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으로서 세금과 팁은 불편한 청구임이 틀림없다. 사실, 한국은 세금이 음식값에 포함되어 있고, 미국은 별도 청구이기에 납세는 동일하다.
위키 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문화 충격은 개인이 자신의 문화와 다른 환경으로 이동할 때 경험할 수 있는 현상으로 이민이나 새로운 국가 방문, 사회 환경의 변화, 또는 단순히 다른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 등 낯선 생활 방식을 경험할 때 느끼는 개인적 혼란이라고 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culture shock(문화 충격)은 개인이 기존에 알고 있는 문화와 가치관이 새로운 문화를 체험할 때 느끼는 충격이다.
20여 년 전 미국 유학 중에 필자가 겪은 첫 문화 충격은 미국인들의 운전 습관이다. 출국 전 알고 있던 미국인의 운전 습관에 비해 한국 사람들의 운전이 훨씬 더 무질서하고 과격하다는 생각은 미국에 가서 편견으로 바뀌었다. 도로 위의 미국 차들은 씽씽거림을 넘어 (한국보다) 난폭에 가까웠다. 그래서 미국의 지인에게 완곡한 표현으로 미국 사람들의 운전이 좀 용감하다(brave)고 하자, 그 미국인은 “not brave, but crazy”라고 응수해 주었다. 용감한 수준을 넘어 미치광이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필자의 눈에도 그래 보였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더 질서가 있고 덜 난폭했다. 불법 유턴도 일상다반사일 정도로 비일비재했다. 한국과 사뭇 다른 운전 문화이기에 배울 점도 있는가 하면 우리의 운전 문화에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다. 우리의 것을 애써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었다.
최근에는 새롭게 출근한 미션스쿨에서의 회식 문화다. 학생 축제를 마치고 수고한 선생님들을 위한 뒤풀이 행사가 있었다. 조금 늦게 회식장에 도착한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3개의 테이블에서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고, 아삭아삭한 김치는 삼겹살의 온갖 기름과 좌충우돌 부딪치면서 김치 고유의 새콤한 맛이 기름의 부드러움을 코팅하면서 단순한 신맛이 아니라 아주 깊이 있는 ‘감칠맛’으로 변신하여 식욕을 마구마구 돋우고 있었다. 나는 ‘이건 뭐지?’ 하는 충격으로 잠시 멍하니 식탁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안주가 넘실대고 있는데, 선생님들 앞에는 술잔이 하나도 없었다. 이해 불가였다. 40년이 넘는 직장생활과 회식을 하면서 술 한잔 없는 회식 문화는 처음 맞이하는 문화 충격이었다. 술이 없어도 가능한 회식 문화! 미션스쿨이기에 가능함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이전에 근무하던 남자 고등학교에서의 축제와 이곳 미션스쿨의 축제는 완전히 달랐다. 남학교의 특성상 초대되는 외부 찬조는 단연 여학교의 여학생들이었고, 여학생들의 공연이 최고의 인기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 여학생들의 무대의상이 어른 남자 교사가 보기에는 너무 민망함 그 자체였다. 반면에, 여고인 이곳 미션스쿨은 선생님들의 회식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댄스면 댄스, 노래면 노래 뭐든 열심과 열정인데 무대의상이 모두 긴 바지에 긴소매 옷이었다. 남을 민망하게 하지 않고도 생기발랄하고 상큼한, 그러면서도 역동적인 학생들의 무대 위 공연은 그저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흐뭇하여 절로 박수를 치고픈 그런 공연이었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의 식탁 위에 놓여있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보고 놀라지 않으면 그는 많은 부분 한국화(Koreanized)가 되어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 다 되었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반면,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계산서의 세금에 놀라지 않거나 자동 청구되는 팁에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이 한국 사람은 문화 충격을 벗어나 상당 부분 미국화(Americanized)가 되어 ‘미국 사람 다 되었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문화는 우열 또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다. 그래서 서로의 문화에 대하여 다름이란 이름으로 존중할 뿐 터부시하거나 배척할 일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