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stination vs. start line –
모순/언어<문화, 문화충격 graduation/commencement
정년 퇴임 만 1년 만에 현직 교사로 복귀한다. 1년 동안 일명 ‘건강한 백수’ 생활을 즐거우면서도 건강하게 잘 보냈다. 매주 월요일에는 00 구청에서 관내 고등학생들에게 학종 설계를 위한 컨설팅을 실시하였고, 화·수·목요일은 이주노통자 및 다문화 학생을 위한 준비 단계로 사이버대의 한국어교육과 다문화 전문가 과정을 복수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감리회사 소속으로 소소한 활동, 칼럼 쓰기, 그리고 흙길 맨발 걷기와 배드민턴 등으로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듣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지내왔다.
이제 이중 취업을 피하기 위해 감리회사를 사직하고 학교 현장으로 되돌아간다. 정년 퇴직을 하면 정년퇴직은 곧 destination(종착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종착역에서 잠시 쉬고 있는 사이에 숭의여고라는 연장선에 개설되어 있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퇴직(retirement)-퇴직하다(retire)의 의미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re(다시)+tire(타이어)에서 tire는 우선 자동차의 타이어를 의미한다. 타이어를 오래 쓰면 자동차 바퀴(타이어)가 힘들어 지치게 된다. 그래서 tire는 지치다, 싫증이 나다, 피곤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피곤함에 지친 타이어는 갈아주어야만 자동차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정년에 이르면 인생이라는 타이어를 다시(re) 갈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퇴직하다의 retire는 인생이라는 타이어를 다시 갈아주는 날이다.


인생이라는 타이어를 갈아준다는 이야기는 자동차 바퀴(타이어) 때문에 폐차하지 않고, 타이어만 갈아주면 자동차가 다시 싱싱 달릴 수 있다는 의미다. 타이어를 갈아주어 차의 주행 성능이 개선되듯이 영어 표현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말이 졸업이라는 단어다. <졸업을 축하합니다!>를 직역하면 <Congratulations for your graduation!>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미국에서 대학원 졸업할 때 미국인 모든 친구가 한결같이 <Congratulations for your achievement!>였다. 한국인의 정서상 졸업식에서는 졸업생 모두에게 으레 <졸업 축하>라는 말을 해왔기에 <Congratulations for your achievement!>라는 말은 신기하고도 생경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졸업을 축하받는 것보다 내가 이루어 낸 성취에 대한 축하라는 표현을 훨씬 더 보람과 성취감을 주는 표현이었다.
그러고 보니 졸업식도 한국식으로 영어로 표현하면 <graduation ceremony>일 것이다. 그러나 영어로는 <commencement ceremony>다. 즉 <graduation ceremony>의 졸업(卒業)은 학업을 <마치다>에 방점이 있다. 그래서 졸업 자체가 목표이기도 하고 졸업 자체로 축하를 받는다. 그러나 영어에서의 <commencement ceremony>는 마침이 아닌 <시작하는 날>에 방점이 있다. 한국의 교육 문화는 <대입>에 교육 역량이 집중된다. 수험생도 학부모들도 모두 대학 입학만 (잘)하면 돼! 하고 주문을 외우고 또 그렇게 대학 입학만 하면 끝이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까지의 인고의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대학 입학 후에는 대부분 쉼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이야기다. 대입이 곧 목표이자 everything이니까….
비슷한 예로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한국의 청소년들은 거의 매년 Top 3위 내외의 좋은 성적을 거둔다. 대단한 실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청소년들이 IMO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 올림피아드 수준과 거리가 멀던 외국의 학생들이 성장 발전하여 노벨상을 받을 때 우리들의 올림피아드 입상자들은 노벨상과 아주 먼 거리에 있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의 교육 문화가 대입만이 everything이니 대학 입학 후에는 쉼과 재충전으로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retire가 종착역이 아니라 타이어를 바꾸어 자동차가 다시 싱싱 달리게 됨을 의미하고, 졸업이 마침(graduation)이 아닌 새로 시작(commencement)하는 날로 정의하는 영어식 표현이 참 좋다. 한 나라의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정체성이 드러난다. 고대부고에서의 retirement가 숭의여고에서 new beginner로서 새롭게 시작하는 날에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들에 대해 한 번쯤은 더 생각해 보고 다듬어야 할 게 있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