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레포트를 채점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8월 초, 일본 대학가는 학기 말 특유의 긴장과 해방감이 뒤섞인 분위기에 싸인다. 교수들은 막바지 수업을 마치고 성적평가 입력에 집중하고, 학생들은 마감 시한을 넘기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매년 반복되는 장면이지만, 올해는 레포트 채점 과정에서 유독 새로운 풍경이 눈에 띄었다.

채점을 하다 보면, 정성을 들여 써내려간 글과 대충 채워낸 글은 한눈에 구분된다. 앞부분만 번듯하고 뒷부분이 휙 사라지는 레포트, AI가 써준 듯한 문장들, 혹은 “교수님 잘못 보냈어요”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학생들. 이런 경우는 해마다 몇 명씩은 있다. 하지만 올해는 예상 못한 형태의 제출도 등장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쓴 글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보내는 것을 넘어, 아예 메모장을 스크롤하는 모습을 화면 녹화로 찍어 영상을 제출한 학생도 있었다. 마치 ‘디지털 레포트’의 시대라도 연 것 같았다.

도구를 사용하는 건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도구가 ‘사고의 도우미’가 아니라 ‘내용을 채우는 임시방편’으로 쓰일 때다. 챗GPT로 복사해 붙여넣은 흔적이 남은 레포트, 감마나 프레지 같은 툴로 멋지게 포장만 된 슬라이드들—이 모든 것이 텍스트는 많지만 ‘자기 언어’가 없는 레포트였다.

나는 시험보다 레포트를 선호하는 입장이다. 시험은 단기 기억으로 채워진 후 금세 잊혀지는 경우가 많지만, 레포트는 조사하고 정리하면서 머릿속을 구조화하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시간을 들여 레포트를 쓰며 얻는 사고력과 표현력은 시험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이 과정을 생략하고 도구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코로나 시기, 비대면 수업을 중심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학생들이 대학에 진입하면서 자기 주도적 학습 경험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보람 있는 순간도 많았다. 영상 제작 수업에서는 전 수강생이 유튜버가 되었다. 단순히 영상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콘텐츠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보는 경험, 그리고 장차 교사가 되었을 때 자신이 맡은 과목을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로 정리해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었다는 점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또 미국 대학생들과의 온라인 디스커션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다른 문화권의 또래와 생각을 나누는 일은 단순한 어학 수업이 아닌, 사고의 확장이다. 어색함 속에서도 끝내 공감과 이해를 만들어가는 그 시간은, 수업 이상의 가치를 남겼다.

성적 입력을 마치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연구와 집필의 시간이다. 교육자에게 주어진 방학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재정비의 시간이다. 이 한 학기, 참 열심히 달려왔다. 학생들도 잘 따라와 주었고, 나 또한 수업 안팎으로 최선을 다했다.

이제 다시 생각의 깊이를 채울 시간. 가을이 오면 새로운 얼굴들과 또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이다. 그 속에서 또 어떤 ‘스크린 레포트’가 등장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안에서 단 하나의 진심 어린 문장을 기다릴 것이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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