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습니까?”
천주교 교리문답은 이에 대해 “사람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여 영원한 복락을 누리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답한다. 인간 존재의 목적을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종교적 답변에 대해 한국 경제사의 거목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1987년 타계하기 한 달여 전, 이 회장은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게 전달해 달라며 24개 항목의 질문을 남겼다. 질문들은 단순한 종교적 호기심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신의 실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었다.
그는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인간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의 존재를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는가” 등을 물었다.
특히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고통과 불행을 주는가”라는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종교와 철학이 씨름해 온 ‘악(惡)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으로 평가된다.
천주교는 이에 대해 인간의 고통이 신의 사랑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교리문답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원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고통의 의미를 해석한다. 하느님은 고통 자체를 원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고, 그 결과 죄와 고통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은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인간의 고난에 참여했다고 가르친다.
이 회장의 질문 가운데 “신이 있다면 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가”라는 물음 역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표적 회의론이다.
천주교는 이에 대해 신이 강압적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 이유를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사랑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신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인간의 믿음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강요된 복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남긴 24개 질문은 오랫동안 답을 얻지 못한 채 남아 있었으나, 이후 차동엽 신부가 저서를 통해 이에 대한 천주교적 해설을 제시하며 다시 주목받았다. 질문이 제기된 지 24년 만이었다.
결국 천주교 교리문답의 첫 질문인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는가”와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질문들은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하나는 신앙의 확신에서,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의문에서 출발하지만 인간 존재의 이유와 삶의 목적, 그리고 죽음 이후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고통은 왜 있는가. 천주교 교리문답과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던지는 물음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