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저의 피신처, 구원의 환호로 저를 에워싸시나이다.” 이 말씀이 오늘 유난히 마음에 오래 머문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이 문장 안으로 숨어들곤 했다. 주님은 늘 그 자리에 계셨고, 나는 그 품 안에서 다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도다.” 오늘은 성당에서 특별한 기쁨이 가득했다. 교회의 신앙을 고백하며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열여섯 명의 새 영세자가 탄생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빛에는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이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기도해주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고 기쁜 신앙의 길을 걸어가기를. “그들은 실컷 먹고 배불렀으니 주님께서 그들의 바람을 채워주셨음이로다.”
문득, 몇 년전 이맘때가 떠오른다. 동경한국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다 서울로 떠난 신 선생님의 견진성사 대부를 섰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의 대부이고 그 선생님은 나의 대자이다. 새롭게 세례를 받는 형제자매들을 보고 있자니 그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젊었지만 참 멋있는 친구였다. 이제는 친구라 불러야 할지, 아들이라 불러야 할지 문득 웃음이 난다. 잘 지내고 있는지, 전화라도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친다. 나는 유아 세례를 받았지만 스물일곱 살에 다시 한 번 세례를 받았다. 시골에서 성당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교적이 사라졌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지만, 그 두 번째 세례는 내 신앙을 다시 붙잡아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경북 칠곡의 낙산성당(영화 신부수업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수도원 소속 성당에서 바오로 신부님께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알베르또. 여섯 달 동안의 수녀님과 신부님으로부터 교리 공부도 빠짐없이 이수했다. “죄를 끊겠습니다. 유혹을 끊겠습니다. 하느님을 믿겠습니다.” 이 약속과 함께 이마 위로 부어지던 성수의 감촉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견진성사를 받았고, 이제는 누군가의 대부가 되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신앙은 너무 오랫동안 ‘나를 위한 신앙’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가 힘들 때만 하느님을 찾고, 내가 편해지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을까. 신앙생활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흘러가야 한다고 늘 배워 왔다. 한때 나는 성당의 교구청에서 8년이나 근무를 했었고, 수녀원과 기도원에서도 생활을 했었다. 수녀님과 수사님들의 이슬처럼 맑고 조용한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세월이다. 세상과 한 걸음 거리를 둔 그 삶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현실에 적응하느라 아니, 먹고 사는 일에 정신이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이슬 같은 삶을 동경한다. 한때는 그 길을 진지하게 꿈꾸었던 적도 있었고, 아들에게 그 길을 강요하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 비록 지금 두 사람 다 그 길을 걷고 있지는 않하지만, 그 삶의 모습만이라도 조금은 닮고 싶다. 요즘 들어 그 생각이 더 자주 그리고 더 간절히 다가온다. 나도 늙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이제야 조금 더 깊이 믿음의 자리에 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