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많은 것을 흐릿하게 만들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오래 전, 대구광역시의 끝자락에서 아직은 시골의 정겨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던 안일초등학교에서의 그날처럼 말입니다. 그날은 유독 고요하게 공부에 몰두한 수학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문제 풀이에 몰두해 연필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던 교실의 적막을 깨고 한 아이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선생님, 경아가 많이 아픈가 봐요.” 모든 시선이 경아에게 쏠렸습니다. 책상에 엎드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경아, 너 어데 아프나?” 경아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아침부터 배가 아팠다며 작은 손으로 배를 꼭 쥐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친한 친구 영숙이에게 경아를 양호실로 데려다주라고 일렀습니다. 두 아이가 교실 뒷문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영숙이가 숨이 턱에 닿아 다시 뛰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경아가 가다가 복도에 토했어요!” 그 순간, 교실 안의 공기가 묘하게 변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인상을 찌푸렸고, 누군가는 벌써 냄새가 난다는 듯 코를 움켜쥐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엔 걱정보다는 거부감이 먼저 서려 있었습니다. 나 역시 담임으로서 아이를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과 동시에, 치워야 할 오물에 대한 본능적인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습니다. 내가 잠시 당황하면서 몸을 움직이기도 전이었습니다. 교실 한구석에서 한 아이가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빠르게 일어섰습니다. 아이는 뒷문 옆에 있던 세숫대야와 빗자루, 쓰레받기를 챙겨 복도로 나갔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윤주였습니다.

복도로 나간 윤주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코를 막고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때, 윤주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친구의 아픔이 쏟아져 나온 그 자리를 묵묵히 쓸어 담았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칭찬을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는 듯, 윤주의 뒷모습은 평온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른인 나조차 머뭇거렸던 그 일을,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오직 ‘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로 실천하고 있었으니까요. 사랑이란 봉사란 무엇일까요?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손을 내미는 그 평범한 행동 속에 있다는 것을 저는 그날 윤주에게 배웠습니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마음이 삭막해질 때면 안일초등학교 복도에서 빗자루를 들고 있던 윤주를 떠올립니다. 남들이 기피 하는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던 그 아이의 이름, 윤주. 사랑은, 봉사는 마음속에 가둬두는 관념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닦아주는 구체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을 그 작은 윤주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윤주야, 잘 지내고 있니?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편지에 조금 놀랐을지도 모르겠구나. 어느덧 3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너도 이제는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있겠구나. 선생님은 가끔 대구 안일초등학교에서 너희와 함께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단다. 사실 오늘 이 편지를 쓰는 건, 아주 오래전 수학 시간에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꼭 전해주고 싶어서야. 아마 너는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사소한 일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날, 경아가 갑자기 복도에 토했던 사건 말이야. 모두가 코를 막고 뒷걸음질 치던 그때, 선생님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때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세숫대야와 빗자루를 들고 복도로 나갔던 네 뒷모습이 선생님은 아직도 눈에 선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너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친구의 아픔이 묻은 그 자리를 묵묵히 치워주었지. 그 더럽고 힘든 일을 마치 당연한 일인 양 해내던 네 모습을 보며, 선생님은 부끄럽기도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단다. “사랑은 저렇게 행동으로 하는 것이구나.”

아이들에게 ‘남을 도와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라고 수없이 말해왔지만, 정작 그날의 진짜 선생님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였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생생한 건, 네가 보여준 그 순수한 마음이 내 삶의 이정표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 거야.

윤주야,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니? 선생님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날 복도에서 보여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씨라면, 너는 분명 주변을 밝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말이야. 세상이 때로는 차갑고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네 안에는 그날의 그 아름다운 불꽃이 여전히 타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선생님에게 가르쳐준 그 ‘실천하는 사랑’을 나도 잊지 않고 아이들에게 전하며 살아가고 있단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네 삶의 모든 순간에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먼발치에서 늘 응원하마.
너를 기억하는 선생님으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