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와 계승어 교육

[ 제4회 한일청소년그림축제 개최 : www.hasam-art.com ]

언어 속에 담긴 정체성의 기억

“계승어(heritage language)”라는 단어는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한국어를 모국어가 아닌 제2의 외국어로 배우는 재외동포들에게, 한국어는 바로 ‘계승어’다. 한국어가 공식어가 아닌 나라에서, 우리 동포들이 자신의 뿌리를 이어가기 위해 배우는 언어 , 그것이 곧 계승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들에게 한국어는 모국어라기보다 ‘계승어’의 성격을 가진다. 언어학자들은 한 언어가 오랜 시간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사용될 때 생명력을 갖는다고 말한다. 재일동포 1세대에게 한국어는 분명 모국어였다. 그러나 2세, 3세로 세대가 이어지면서 생활의 중심이 일본 사회로 옮겨가자,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익숙한 언어가 되었다. 그렇게 한국어는 점차 ‘계승어’로 남게 된 것이다.

A historical image depicting students from a Korean educational institution in Japan, emphasizing the theme of heritage language education.

하지만 계승어가 된다고 해서 우리말과 글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소중히 가꾸고 지켜야 할 언어가 된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현지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한 민족의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다. 인류의 문화유산이 하나씩 잊혀지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많은 이민 1세대가 자녀들에게 영어 습득을 우선시하면서, 민족의 언어는 2세대에서 사라지곤 했다. 반면 화교나 이스라엘인들은 오랜 세월 자신들의 언어를 꾸준히 이어오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냈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재외동포 교육에서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한 언어 교육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정체성 확립의 문제다. 우리말을 배우며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가 거듭된 재일동포의 경우,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교육의 시작은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문화 속에서 형성된 그들만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만 진정한 민족교육이 가능하다.

흑백 사진으로, 건물 옆에 있는 표지판에 한자로 '아과서당'이라고 적혀 있고, 배경에는 나무 울타리와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날 재일동포 3세, 4세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는 동시에, 일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함께 안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인으로만 살아라”라고 강요한다면 오히려 또 다른 혼란을 낳을 수 있다. 재일동포는 일본인도, 완전한 한국인도 아닌, 두 세계의 경계 위에 선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의 정체성을 포용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교육적 접근을 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인이라는 것에 긍지를 느끼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말은 재일동포 사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재일동포들이 조국의 어려운 시절 경제적·정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야 한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오늘의 한국을 지탱해온 보이지 않는 힘이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은 단지 “한국화”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인정하고,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민족주의의 틀을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조국에 대한 긍지를 함께 길러주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계승어 교육’이 지향해야 할 길이다.

A group of individuals at a conference celebrating 70 years of Korean education for Koreans in Japan, with a banner in the background emphasizing new directions for national education.

올해는 한국인의 일본 유학 역사가 144년을 맞는 해이다. 1881년, 고종이 파견한 신사유람단이 게이오의숙과 도시샤에서 공부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최근 재일한국인유학생연합회에서는 ‘신도래인(新渡來人)’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유학생들이 한일 교류의 가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의 재일동포 사회는 세대를 이어온 동포뿐 아니라, 유학생·주재원·신정주자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정체성은 서로 다르지만, 그 다양성 속에서 양국을 연결하는 힘이 싹튼다.

결국 계승어 교육의 목적은 단 하나다. 한국어를 통해 뿌리를 기억하게 하고, 동시에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의 언어 속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게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재일동포들이 ‘경계 위의 사람’이 아니라 ‘두 세계를 잇는 다리’로 살아가게 하는 진정한 교육의 힘일 것이다.

A historical black and white photo depicting a march with individuals holding signs advocating for education rights for Korean children in Japan, showcasing a blend of determination and cultural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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