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떠난 교정.
텅 빈 운동장 위로 봄비가 조용히 내려앉고, 창문 너머로는 벚꽃이 바람에 흩날린다.
꽃잎은 빗물에 젖어 더 천천히, 더 깊이 떨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한 분의 선생님이 떠오른다.
마치 내 기억 속 어디에선가 아직도 교탁 앞에 서 계신 듯이.
5학년, 나의 담임선생님은 참으로 두려운 분이었다.
불같은 성격에, 가까이 가기조차 망설여질 만큼 엄격했다.
나는 1년 내내 그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꾸중을 피하기 위해 숨죽이며 지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는 안다.
그 두려움 속에서 내가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를.
피아노를 처음 배운 것도,
그 시골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그림의 세계를 만난 것도,
수많은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던 기억도—
모두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그해는 유난히도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해였다.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돌이켜보면
내 삶의 뿌리가 단단해진 시간이었다.
어린 나는 선생님을 사람이라기보다
어딘가 다른 존재로 여겼다.
화장실에 가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선생님은 ‘이슬만 먹고 사는 신선’이라고 믿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그 믿음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닫힌 화장실 문을 호기심에 열어젖힌 순간,
그 안에는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의 선생님이 계셨다.
우리는 놀라 달아났고,
교실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책을 펼쳤다.
그리고 얼마 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시던 그 발걸음.
그때의 심장이 내려앉는 감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실은 실망이면서 동시에 더 깊은 기억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끝까지
그분을 ‘신선’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종종 그 선생님을 떠올렸다.

한 번은 아이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였다.
선생님은 “내가 잘못 가르쳤다”며
반장이던 나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하셨다.
나는 끝내 손을 들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그 장면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훗날,
나 역시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그 기억을 꺼내 들었다.
아이들 앞에서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잘못 가르쳤다.”
그날, 아이들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리고 교실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다시 같은 방법을 썼을 때,
한 아이는 정말로 나를 때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시대도, 아이들도 변한다는 것을.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남겨준 한 사람의 존재.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조금은 잘 그린다고 스스로 믿고 있던 아이.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첫 작품을 보자마자 호되게 꾸짖었다.
“이걸 그림이라고 그렸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시키지 않던 선생님은
어느 날, 한 무더기의 그림을 내게 던져주셨다.
“똑같이 그려라!”
그 그림들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였다.
나는 그저 미친 듯이 따라 그렸다.
색을 흉내 내고, 선을 따라가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려 애썼다.
그 시간 끝에,
나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나는 도내 미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위한 기다림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 것 같다.
가르친다는 것은
무언가를 주는 일이 아니라
보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세월은 많은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지만,
어떤 장면들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개똥을 채변봉투에 담아 갔다가
“네가 개냐?”라는 호통과 함께
몽둥이를 맞던 날의 부끄러움까지도,
이제는 웃음 섞인 추억이 되어 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봄비는 여전히 내리고,
벚꽃은 또다시 떨어진다.
나는 창가에 서서
아이들이 떠난 교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지금의 내 모습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이슬만 먹고 살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
조금은 두려웠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
그런 선생님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