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함을 넘어, 이해와 존중으로

일본의 한 심야 방송에서 한국의 풍경과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화면에 비친 첫 장면은 서울 재래시장의 고추 더미였다. 자루 가득 담긴 붉은 고추들이 줄지어 놓인 모습은 고향 여름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뜨거운 여름 고추밭에서 땀 흘리며 수확하고, 멍석 위에 고추를 널어 햇볕에 말리던 일상은 한국인들의 공동체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떠올릴 때 ‘김치’와 ‘매운맛’으로 기억하는 이유가 이 장면에 오롯이 담겨 있다.

두번 째로 소개된 장면은 불을 이용한 마사지였다. 한국인인 나도 조금은 낯설고 다소 위험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한국인들의 도전 정신이 깃들어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 없는 정체는 곧 퇴보를 의미한다. 불꽃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모습은 한국 사회가 가진 역동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얼음으로 만든 냉면 그릇이다. 하나의 요리가 예술 작품처럼 재해석되는 순간이었다. 얼음 그릇 위에 담긴 냉면은 그냥 음식을 넘어 창의성의 결정체로 빛났다. 일본인 리포터의 감탄이 절로 나왔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런 작은 아이디어가 국경 넘어까지 전해지고, 금세 일본에서도 유행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그릇이 예술 작품이 되고 한 끼의 식사가 창의성과 상상력의 산물로 승화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스팀 세차기는 더욱 인상 깊었다. 단 2리터의 물로 자동차 한 대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발명품은 환경을 고려한 창의적 해법이자 미래 비전을 담고 있었다. ‘신기함’을 넘어 환경과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보여주어 일본 리포터조차 탐낼 정도였다. 진정ㅇ로 한국인들의 창의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난 후 내 마음 한켠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한국의 문화와 생활상이 일본인들의 시각에는 그저 ‘신기한 풍경’의 범주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이국적인 정글 이야기나 중국 오지의 특이한 풍습과 나란히 소개되면서, 한국 또한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마주하였던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품는 호기심 속에는 진정한 이해와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역사적 맥락을 외면한 채, 한국인의 당당함을 그저 ‘배짱’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가 “도대체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당당할까? 어떤 배짱으로 일본을 대하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질문 속에는 한국이 걸어온 역사와 일본과의 관계를 돌아보려는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강제 점령기 동안의 한국에 대한 수탈, 6·25 전쟁으로 인한 일본의 특수와 경제 성장 등 일본이 누린 것들이 한국과 연관이 있다는 역사적 맥락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한국이 초강대국이 되지 않는 한, 일본은 한국을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 같다. 힘과 돈만을 기준으로 관계를 규정하는 한, 양국이 진정한 이웃으로 서기란 요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한국의 진면목은 신기함에 있지 않다. 그것은 땀으로 일군 삶의 기억 속에, 위험을 무릅쓴 도전 속에, 자연과 공존하려는 발명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일본이 이웃을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바라보는 날 비로소 양국은 힘과 이해, 돈과 존중을 넘어선 새로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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