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은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섹스 어필의 해’라 불릴 만큼 강렬한 전환점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Bad」, 프린스의 「Sign o’ the Times」, 조지 마이클의 「Faith」는 스타들이 단순히 음악적 성취를 넘어, 성적 매력을 전략적으로 무대에 결합시킨 대표적 사례였다. 이 흐름은 홍콩 대중음악계에도 즉각 투영되어, 이른바 ‘무적 3인방’—담영린(Alan Tam), 장국영(Leslie Cheung), 매염방(Anita Mui)—의 무대와 음악을 새롭게 정의했다.
매염방 – 여성적 주체성의 폭발
〈烈焰紅唇〉(열염홍순, Blazing Red Lips)은 강렬한 록 비트와 신시사이저가 어우러진 곡으로, 파워풀한 보컬과 도발적 무대 연출을 통해 홍콩 여성상을 새롭게 제시했다. 붉은 입술의 이미지는 단순한 연애의 은유를 넘어 여성 욕망과 주도권을 상징했으며,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청년 여성에게 해방적 자아상을 제공했다.
장국영 – 불안과 해방의 카리스마
〈無心睡眠〉(무심수면, Sleepless Nights)은 유로비트 계열의 신스팝 댄스곡으로, 클럽 문화와 청년층의 야간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했다. 반환을 앞둔 홍콩 사회의 불안과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을 불태운다’는 세대적 열망이 그의 섹시한 무대와 맞물려 상징화됐다. 장국영의 섹스 어필은 외모가 아닌 세대의 해방적 정서를 담은 카리스마에서 비롯되었다.
담영린 – 절제된 남성성의 매력
〈愛情陷阱〉(애정함정, Love Trap)은 감미로운 멜로디와 세련된 편곡이 돋보이는 곡으로, 화려한 무대 대신 안정감과 절제를 내세웠다. ‘사랑의 함정’이라는 메타포는 격변의 시대 속 불확실한 개인의 삶을 대변했으며, 감성적이고 성숙한 남성상을 통해 다른 방식의 섹스 어필을 구현했다.
1987년, 홍콩 청년문화의 결정적 순간
세 곡은 홍콩 청년문화의 양면성을 압축했다. 매염방은 여성 해방의 섹시함을, 장국영은 불안과 쾌락적 자유를, 담영린은 안정과 성숙의 매력을 드러냈다. 이는 홍콩 가요계가 세계 팝의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고유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반영해 독자적 언어로 청년 세대의 욕망과 정체성을 표출한 결정적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