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970년대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쇼와(昭和)의 낭만’ 같은 수식어를 쓴다. 그러나 1975년에 발표된 “무명 손수건 (木綿のハンカチーフ)”은 그러한 수사(修辭) 이상의 무언가를 담아낸 노래다. 이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이별 이야기나 그 시절의 정취를 넘어, 지방에서 도시(특히 도쿄)로 떠나는 사람들의 현실과 애환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어쩌면 지금 돌이켜보면 뻔한 설정일 수 있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젊은이, 그리고 남겨진 연인의 마음. 하지만 노랫말은 이를 직접적으로 ‘고생’이나 ‘눈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남자가 동(東)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 도시의 화려함에 물들어 가는 모습을 조심스레 편지 형식으로 전하고, 여자는 “아무런 선물도 필요 없으니 돌아오기만을 바란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결말에서 남자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여자는 슬픔에 겨워 무명 손수건을 부탁한다. 울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그리고 눈물을 받아줄 ‘무명 손수건’이라는 상징이 주는 묵직한 울림은 꽤나 일본적이다. 섬세하고 완곡한 표현으로 비극과 그리움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한 여배우가 이 곡을 리메이크해 노래하는 영상을 출근길 전철 안에서 보다가, 무심코 눈물을 흘렸다. 화면 속 여배우는 ‘돌아갈 수 없다’고 노래하다가 울컥하는 기색이었으나 실제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화면을 본 나는 눈물을 흘렸으니, 이보다 더 ‘일본적’인 장면이 어디 있을까 싶다. 슬픈 감정마저 절제하고 완곡하게 드러내는 모습, 그것을 지켜보며 더 크게 감정이 고조되는 아이러니 말이다.
한국은 1998년 이전까지 일본 문화를 부분적으로나마 배척해왔다. 오랜 역사와 정치적 상황은 한일 관계에 복잡한 흔적을 남겼고, 그 여파는 문화 전반에도 짙게 깔렸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한껏 뜨겁던 반일(反日)의 분위기에서, 이제는 일본의 정갈한 음식과 세심한 감성, 색다른 도시 풍경에 열광하며 일본을 관광지로 적극 찾는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개적으로 “한국이 좋다”라고 외치기 쉽지 않은 정서가 남아 있어도, 한류 드라마와 영화, 노래, 음식 등을 일상 속에서 즐긴다.
올해는 한일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다. 각자 쉽지 않은 역사를 품고 있지만, 이제는 ‘솔직해지자’고 말할 때다.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문화의 교류와 공감을 통해 한일 양국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길 바란다. 노래 한 곡이 주는 파장은 생각보다 크다. “무명 손수건” 처럼 삶의 서사를 은유적으로 담은 노래가 한 편의 편지처럼 오래 회자되는 것처럼, 언젠가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담은 노래가 일본에서도 누군가의 눈물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한국과 일본, 앞으로는 사이좋게 서로의 ‘더 깊은 맛’과 ‘더 진한 정서’를 나누며 함께 성장해가기를 기대한다.
무명 손수건
작사: 마츠모토 타카시 松本隆
작곡: 츠츠미 쿄우헤이 筒美京平
노래: 오오타 히로미 太田裕美
연인이여, 나 이제 떠나
동쪽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화려한 도시에서 너에게 줄 선물을
찾고, 또 찾아볼 생각이야
아니에요, 당신, 난
갖고 싶은 건 없어요
그저 도시의 물감에
물들지 말고 돌아와 줘요
물들지 말고 돌아와 줘요
연인이여, 반년이 지났네
만나지 못해도 울지 말아 줘
도시에서 유행하는 반지를 보내줄게
너에게, 분명 잘 어울릴 거야
아니에요, 별처럼 빛나는 다이아도
바다에 잠든 진주도
분명 당신의 키스만큼
반짝이지는 않을 거예요
반짝일 리 없어요
연인이여, 지금도 화장기 없이
립스틱조차 바르지 않은 채인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정장을 입은 내
사진, 사진을 봐주길 바라
아니에요, 풀밭에 누워 있던
당신을 좋아했었어요
하지만 차가운 바람 부는 빌딩 숲에서
부디 몸조심해 주세요
몸조심해 주세요
연인이여, 널 잊은 채
변해 가는 나를 용서해 줘
매일을 유쾌하게 보내는 이 거리에서
난, 난 돌아갈 수 없어
당신, 마지막으로 떼를 써볼게요
선물을 하나만 더 부탁할게요
저기, 내 눈물 훔칠
무명 손수건을 주세요
손수건을 주세요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