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센다이로 향하다

  • 9년째 이어진 한일 우정의 발걸음
  • 제9회 한일 우호 축구 교류회 in 나토리
  • 축구공 하나에 담긴 9년의 약속

새벽 5시. 아직 도쿄의 거리가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 한 무리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센다이를 향해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미야기현 나토리시. 신칸센을 타고 약 2시간을 달려야 하는 먼 길이다. 하루 종일 경기를 치르고 다시 도쿄로 돌아오면 밤 10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이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2026년 9월 26일, 미야기현 나토리시 도오미즈카 경기장에서 열린 「제9회 한일 우호 축구 교류회 in 나토리」에는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 60명이 함께했다. 일본 30명, 한국 30명. 서로 다른 언어와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이날만큼은 같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하나가 됐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1회부터 9회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동경한국학교 이훈우 교감이다.

(9년 전 시작된 작은 약속)

이 대회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행사의 출발점에는 일본에서 발생한 대규모 재난 이후 한국이 전한 위로와 연대의 마음이 있었다. 주센다이 대한민국 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일본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위로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한일 청소년들이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는 뜻이 모였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축구라는 가장 친숙한 스포츠를 통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대회가 열리는 도오미즈카 경기장 역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311관동대지진 당시 지진으로 물에 잠겼던 경기장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복구됐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이 함께 뛰는 공간이 됐다. 상처를 입었던 땅 위에서 아이들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은 어쩌면 한일 관계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함께 뛰는 것. 그것이 이 대회가 9년 동안 이어져 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오던 팀이 어려워지자 동경한국학교가 나섰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축구팀을 구성해 일본으로 참가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대회가 거듭될수록 한국에서 직접 일본까지 팀을 보내는 데에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생겼다. 행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동경한국학교 학생들이 대회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이훈우 교감은 학생들과 함께 꾸준히 센다이를 찾았다. 한 번의 참여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매년 이어지는 약속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이렇게 1회 대회부터 9회 대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한 해의 일정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9년 동안 매년 같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도쿄에서 센다이까지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학생들을 챙기고, 이동하고, 경기를 치르고, 다시 돌아오는 하루의 일정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새벽에 출발해 밤늦게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이훈우 교감은 매년 학생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9년 동안 이어진 것은 단순한 참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는 계속 만나겠다’는 약속이었다.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

아이들에게 한일 관계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은 말보다 훨씬 큰 교육이 된다. 책에서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배우는 것과 일본 친구와 한 팀이 되어 운동장을 뛰는 것은 다르다. 상대편 선수가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고, 경기가 끝난 뒤 서로 악수하며 웃는 순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이훈우 교감이 9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센다이를 찾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일 우호라는 거창한 말을 가르치기보다 아이들이 직접 만나고, 함께 뛰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도록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살아 있는 교육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바탕에는 일본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한국에서 전했던 위로와 연대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게 이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여러분들의 눈동자에도 별이 있습니다”)

이번 제9회 대회에서 동경한국학교 팀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훈우 교감에게 우승컵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다. 바로 학생들의 눈빛이었다. 경기를 마친 아이들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함께 웃고, 서로를 격려하고, 경기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이훈우 교감은 학생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했다. “하늘에만 별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여러분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여기에도 많은 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서로 나눈 우정을 잊지 말고 한국과 일본을 서로 이해하고 연결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해 주시기 바라며, 여러분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짧은 훈화였지만 그 안에는 9년 동안 이 행사를 이어온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에게 우승을 축하하는 말보다 우정을 기억하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승컵보다 값진 것)

축구에는 승패가 있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하지만 한일 우호 축구 교류회에서 진정한 의미는 경기 결과에만 있지 않았다. 한국의 학생과 일본의 학생이 한 운동장에서 만나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함께 땀을 흘리고, 친구가 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승리였다. 이번 대회에서 동경한국학교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쁨은 더욱 컸지만, 그보다 더 값진 것은 학생들이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축구공 하나가 언어와 국경을 넘어 두 나라의 청소년을 연결했다. 그리고 그 연결의 현장을 9년 동안 묵묵히 지켜온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의 발걸음이 만든 9년의 역사)

행사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민단 미야기현 지방본부, 나토리시 축구협회, 주센다이 대한민국 총영사관, 센다이교육원, 나토리시 관계자와 수많은 관계자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회가 가능했다. 그 가운데 동경한국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의 꾸준한 참여 역시 대회를 이어가는 중요한 힘이 됐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늘 이훈우 교감이 있었다. 9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학생들을 이끌고 센다이를 찾았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서도 아니고, 특별한 보상을 기대해서도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 계속 만나기를 바랐고, 한일 청소년들의 우정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때로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야 했고, 때로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다시 도쿄에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 또 한 번 이어진 발걸음이 어느덧 9년의 역사가 됐다.

(아픔의 땅에서 피어난 아이들의 꿈)

도오미즈카 경기장을 바라보면 이 대회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한때 재난으로 물에 잠겼던 곳. 그러나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난 곳. 그리고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이 뛰고 있는 곳. 과거의 아픔이 있었던 자리에서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이 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은 특별하다. 이제 아이들은 언젠가 자라서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어떤 학생은 교사가 되고, 어떤 학생은 스포츠 선수가 되며, 또 어떤 학생은 기업인이나 예술가, 외교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날의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센다이에서 만난 친구. 함께 뛰었던 운동장. 서로를 응원했던 목소리. 그리고 “여러분들의 꿈을 응원한다”던 어른의 따뜻한 격려. 그 기억은 훗날 이 아이들이 한국과 일본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작은 씨앗이 될 것이다.

(이제 10주년을 향해)

제9회 대회를 마친 미야기현 민단 관계자는 내년 제10회 행사를 더욱 다양하고 뜻깊게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9년 동안 이어온 만남이 이제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길에는 또다시 축구공이 놓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이 다시 만나고, 다시 뛰고, 다시 웃을 것이다. 아마 그날에도 누군가는 새벽 일찍 일어나 학생들과 함께 센다이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지난 9년 동안 이어온 한 사람의 발걸음이 또다시 새겨질 것이다. 이훈우 교감의 9년은 단순히 축구대회에 참가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일 청소년들이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온 시간이며, 재난의 아픔을 우정과 희망으로 이어온 시간이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꾸준함이 어떻게 한일 우정의 작은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시간이다. 축구공은 언젠가 멈춘다. 경기도 끝난다. 우승컵도 다음 대회에서는 새로운 주인을 만난다. 그러나 함께 뛰었던 기억과 서로에게 건넨 손, 그리고 친구가 되어 웃었던 순간은 오래 남는다. 새벽 5시에 시작했던 한 사람의 발걸음이 9년을 지나 이제 10주년을 향하고 있다. 그 길 위에서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은 오늘도 서로를 향해 뛰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이훈우 교감이 말했던 것처럼, 미래를 밝히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다. 축구로 시작된 만남이 우정이 되고, 우정이 신뢰가 되며, 그 신뢰가 두 나라의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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