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미도 등대 불빛 따라 열린 인천상륙작전…76년 전 그날의 기억

1950년 9월 15일 새벽, 칠흑 같은 인천 앞바다에 팔미도 등대의 불빛이 켜졌다. 이 불빛은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좁고 복잡한 수로를 통과하던 유엔군 함대의 항로를 밝히는 중요한 길잡이가 됐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미 해군 유진 클라크 대위와 한국군 인원들은 팔미도 일대에서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미 해군 역사 자료에 따르면 클라크 대위 측은 9월 14일 밤 팔미도 항로표지를 점등해 함대가 인천으로 진입하는 것을 지원했다.

인천은 큰 조수간만의 차와 좁은 수로, 높은 방벽 등으로 대규모 상륙작전을 펼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유엔군은 이를 역으로 이용해 북한군의 허를 찌르는 상륙작전을 계획했다. 작전명은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였다.

9월 15일 오전 6시30분께 미 해병대 제5해병연대 3대대가 월미도 북서쪽 녹색해안(Green Beach)에 상륙했다.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 기록에 따르면 미 해병대는 이날 정오 무렵 월미도를 확보했다.

인천상륙작전은 하루 동안 여러 단계로 진행됐다. 월미도 상륙 이후 조수 때문에 본격적인 인천 시가지 상륙은 오후까지 기다려야 했다. 오후에는 레드비치와 블루비치를 통해 병력이 상륙하면서 인천 장악 작전이 확대됐다. 한국 해병대 병력도 작전에 참여했다.

유엔군은 9월 16일 인천을 확보한 뒤 서울을 향해 진격했다. 17일에는 김포비행장을 확보했고, 이후 한강을 넘어 서울 수복 작전을 전개했다. 인천상륙작전은 낙동강 방어선에 집중돼 있던 북한군의 후방과 보급선을 압박하면서 6·25전쟁 초기 전세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76년이 흐른 2026년,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월미도 해안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평온한 공간이 됐다. 그러나 월미도와 팔미도에는 인천상륙작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팔미도 등대는 어둠 속에서 인천 앞바다로 향하는 함대의 항로를 밝혔던 역사의 현장이다. 월미도 녹색해안은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부대가 발을 내디딘 장소이며, 인천 자유공원에는 작전을 지휘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인천상륙작전 76주년을 맞아 이들 장소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전쟁의 희생과 참전용사들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역사 공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쟁의 흔적이 남은 바다 위에는 이제 일상의 평화가 자리 잡았다. 1950년 9월 15일 팔미도에서 밝혀진 한 줄기 불빛과 월미도 해안에서 시작된 상륙작전의 기억은 오늘날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역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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