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교회에서 세계 최대 교회로…한국 ‘순복음교회’의 역사

한국에서 ‘순복음교회’라는 이름은 일반적으로 오순절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계열 교회를 가리킨다. 그 중심에는 1958년 서울 대조동에서 출발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있다.

순복음교회의 뿌리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확산한 오순절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오순절운동은 성령 체험과 방언, 신유, 적극적인 전도를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1928년 미국 오순절교단 소속 선교사 메리 럼시의 입국을 계기로 관련 신앙운동이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1933년 조선오순절교회가 조직됐지만 일제의 종교 탄압과 선교사 추방으로 활동이 위축됐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친 뒤 미국 하나님의성회 선교사들과 한국인 목회자들이 교단 재건에 나섰다. 1953년 4월 8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의 서울남부교회에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순복음’은 영어 ‘풀 가스펠(Full Gospel)’을 번역한 표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원에만 한정하지 않고 성령 충만과 치유, 축복, 재림까지 포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사는 1958년 5월 18일 시작됐다. 순복음신학교를 졸업한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는 당시 서울 서대문구 대조동에서 신자 5명과 함께 개척예배를 열었다. 교회는 최자실의 집 거실과 마당의 천막을 예배 공간으로 사용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과 질병, 실업에 시달리던 주민들에게 순복음교회의 메시지는 빠르게 확산했다. 조용기는 구원과 성령 체험뿐 아니라 질병의 치유와 생활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러한 설교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당시 서민층의 현실적 요구와 맞물렸다.

신자가 늘면서 교회는 1961년 서대문으로 이전했다. 1962년 순복음중앙부흥회관을 완공했고 조용기는 같은 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서대문 시기 교인 수가 급증하자 교회는 더 큰 예배당 건립을 추진했다.

1969년 당시 모래벌판에 가까웠던 여의도에서 새 성전 건축이 시작됐다. 공사 과정에서 자금난과 건축비 상승 등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1973년 9월 여의도 성전이 완공됐다. 교회는 이후 여의도 시대를 열었고 1984년 명칭을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변경했다.

성장의 핵심에는 ‘구역조직’이 있었다. 교인들을 거주 지역별 소그룹으로 나누고 구역장이 예배와 돌봄, 전도를 담당하도록 한 방식이다. 특히 여성 평신도들이 구역장으로 대거 참여했다. 대형 예배당 중심의 주일예배와 지역별 소그룹 활동을 결합한 운영 모델은 국내외 교회 성장 연구의 주요 사례가 됐다.

교회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핵심 교리로 내세웠다. 오중복음은 중생, 성령 충만, 신유, 축복, 재림을 의미한다. 삼중축복은 영혼과 생활, 육체의 회복을 함께 강조하는 신앙 체계다. 조용기가 제시한 ‘4차원의 영성’도 순복음 신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1973년에는 경기도 파주에 순복음오산리기도원이 세워졌다. 현재의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이다. 금식과 철야기도, 치유집회를 중심으로 운영된 기도원은 한국 개신교의 기도원 문화를 확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9년 등록 교인 10만 명을 넘어섰고 1980년대 중반에는 50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이후 세계 최대 단일교회로 알려지면서 한국 개신교 성장의 상징이 됐다. 다만 교회가 발표한 등록 교인 수와 실제 정기 출석 인원은 집계 기준이 달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해외 선교도 확대됐다.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현지 교회를 설립하는 한편 세계 오순절교회 지도자들과 교류했다. 조용기는 1976년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을 창설해 교회 성장 경험을 해외 목회자들에게 전했다. 구역조직과 평신도 지도자 양성 방식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교회에 소개됐다.

교회의 영향력은 언론과 교육, 복지 분야로도 넓어졌다. 1986년 한세대학교의 전신인 순복음신학교가 대학으로 승격됐고, 1988년에는 국민일보가 창간됐다.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 장애인·노인 복지, 재난 구호와 장학사업 등 사회공헌 활동도 전개했다.

급격한 성장의 이면에는 비판도 뒤따랐다. 개인 지도자에게 집중된 교회 운영, 물질적 축복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신학적 논란, 재정의 투명성과 목회 세습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다. 조용기는 교회에 손해를 입힌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돼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받았다. 한국 대형교회의 책임성과 재정 운영을 둘러싼 논쟁을 키운 사건이었다.

2008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조용기는 원로목사로 물러났고 이영훈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교회는 2010년 수도권의 20개 지교회를 독립된 제자교회로 분립했다. 대형교회에 집중됐던 교인과 조직을 지역교회로 분산하려는 조치였다.

창립자인 조용기는 2021년 9월 14일 별세했다.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영훈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세대교체와 조직 개편, 복지·구호사업 확대, 해외 선교 네트워크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순복음교회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전쟁 이후의 빈곤 속에서 시작해 산업화와 도시화, 대중사회 형성과 함께 성장했다. 성령 체험과 치유, 소그룹 조직, 적극적인 해외 선교를 통해 한국 개신교의 외형적 성장을 이끌었다.

동시에 순복음교회가 남긴 과제도 분명하다. 지도자 중심 구조에서 벗어난 민주적 운영, 재정 투명성, 사회적 신뢰 회복, 다음 세대와의 소통이 그것이다. 대조동의 작은 천막에서 시작한 순복음교회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한국 사회와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새로운 역사의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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