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고종의 후손들은 일제강점기 일본 왕공족 제도에 편입돼 상당 기간 도쿄에서 생활했다. 이들이 거주했던 저택은 단순한 개인 주택이 아니라 일본이 대한제국 황실을 관리하고 통제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장 잘 알려진 곳은 고종의 일곱째 아들 영친왕 이은과 부인 이방자가 살았던 이왕가 도쿄저다. 도쿄 지요다구 기오이초 1-2에 자리한 이 건물은 1930년 완공됐다.
영친왕 부부는 1920년 결혼한 뒤 일본에서 생활했으며, 이 저택은 이들의 도쿄 생활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서양식 외관과 내부 장식을 갖춘 건물로, 당시 일본 왕공족 저택의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광복 이후 이왕가 재산은 일본 정부에 귀속됐고, 저택은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의 일부로 사용됐다. 현재는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보존돼 결혼식과 연회, 식음 시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은 도쿄도 지정 유형문화재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아들들도 도쿄 시부야구 도키와마쓰 일대에 거주했다. 의친왕의 장남 이건의 저택인 ‘이건공저’는 당시 주소로 도쿄시 시부야구 도키와마쓰초 101-18에 있었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이건공저의 대지는 약 1,384평에 달했다. 이건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일본 패전 이후 왕공족 지위를 잃었으며 일본 국적을 선택해 이름을 ‘모모야마 겐이치’로 바꾸고 일본에서 생활했다. 그는 1990년 일본에서 사망했다.
이건의 동생 이우가 사용한 ‘이우공저’는 도키와마쓰초 101-19에 있었다. 대지는 약 1,839평으로 이건공저보다 넓었다. 두 저택의 지번이 101-18과 101-19로 이어져 있어 형제의 저택이 같은 도키와마쓰 부지에 인접해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우는 의친왕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운현궁의 이준용에게 입양돼 공위를 계승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가 됐지만 일본인 여성과의 혼인을 거부하고 조선인 박찬주와 결혼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뒤 다음 날 사망했다.
다만 도키와마쓰초 101-18과 101-19는 당시 지번이다. 전후 행정구역과 지번 체계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를 현재의 도로명식 주소처럼 그대로 찾아가기는 어렵다. 옛 도키와마쓰초 일대는 현재 시부야구 히가시와 시부야 주변 지역에 해당한다. 이건공저와 이우공저 건물도 기오이초의 이왕가 도쿄저와 달리 현존하는 문화재로 보존되지 않았다.
기오이초 저택과 도키와마쓰의 두 공저는 대한제국 황실 후손들의 일본 생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화려한 저택의 외관 이면에는 식민지 지배 아래 일본으로 건너가 교육받고 일본군에 편입돼야 했던 황손들의 복잡한 삶이 담겨 있다. 특히 기오이초의 옛 저택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축물을 통해 영친왕 가족의 삶과 대한제국 황실의 해체 과정을 되짚게 하는 역사적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