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칼럼 85] jky의 영어이야기

– 월드컵(2) : 앙숙 관계의 잉글랜드와 프랑스 –

#월드컵 #바이킹 #노르만족의침공 #100년전쟁 #잉글랜드 #프랑스 #잉글랜드 #노르망디

2026 북중미 월드컵이 토레스의 골에 힘입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필자에게는 결승전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3・4위 결정전(Third-Place Play-off 또는 Match for Third Place)이 더 흥미로운 경기였다. (참고로 올림픽에서 3・4위 결정전은 보통 Bronze Medal Match/Game이라고 한다.) 우승 후보 프랑스가 스페인에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여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대결이 불투명했으나, 필자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잉글랜드도 아르헨티나에 패하며 결국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3・4위 결정전이 성사되었다.

바이킹의 침략(Viking Invasion)이 고대 영어에 영향을 준 <리모델링 수준>이었다면, 노르만족의 정복(Norman Conquest)은 고대 영어가 중세 영어로 바뀌게 되는 <재건축 급>의 격변을 가져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이킹과 노르만족 모두 혈통 상으로 동일한 게르만족의 후예다. 서기 449년부터 앵글로색슨족이 잉글랜드 땅을 침공한 것을 역사적으로 게르만족의 정복(The German Conquest)이라고 한다. 쥬트족과 앵글족 그리고 색슨족 모두 고대게르만족이기 때문이다. England는 이들 세 민족 중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한 앵글족의 땅(The land of Angles)이라는 의미다. 이 잉글랜드 땅(England)을 787년경부터 앵글로·색슨족과 한 핏줄인 스칸디나비아반도 일대의 북유럽 바이킹의 바이킹들이 침략하였으니 언뜻 보기에는 동족 간의 싸움이었다.

스칸디나비아의 약탈자 바이킹이 서쪽 잉글랜드를 침략하던 시기에 남쪽으로 침략한 바이킹은 프랑스의 북쪽 지역에 정착하여 프랑스의 문화와 언어에 동화되었다. 즉 잉글랜드에 정착하여 정체성을 유지한 바이킹과 달리 프랑스에 정착하여 프랑스에 동화된 바이킹을 노르드인(Norse) 또는 노르만(북쪽에서 온 사람, the Normans)이라고 불렀다. 노르망디(Normandy)는 노르만족이 차지한 땅(The land of Normans)이라는 뜻이다.

바이킹의 후예로 노르만족이 된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 1066년에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약 300년 동안 잉글랜드 지배층의 공용어는 프랑스였다. 영어는 한마디로 <하층민이나 쓰는 미개하고 불필요한 언어(a vulgar tongue)>로 전락하여 중세 영어 시기를 맞게 된다. 정복왕 윌리엄은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귀족이면서 동시에 잉글랜드의 왕이었다. 프랑스의 귀족(노르망디 공작)이 자신들의 왕이 된 잉글랜드로서는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시기였으며, 양국 간 앙금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에도 두 나라는 백년전쟁을 필두로 종교적 갈등과 식민지 패권 다툼, 나폴레옹 전쟁 등 끊임없는 경쟁과 갈등을 이어왔다. 그러나 두 나라가 갈등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독일의 부상으로 위기감을 느낀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충돌을 멈추고 손을 잡고 수백 년간 지속된 갈등을 청산하고 협력 관계로 전환했다.

임진왜란과 경술국치에 의한 일제 강점기 등 일방적 가해자와 피해자로 얽힌 한일 관계와 달리,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수백 년간 상호 간 우월감과 열등감을 주고받은 대등한 라이벌 관계에 가깝다. 그래서 필자는 수백 년의 경쟁과 갈등을 거치며 대등한 라이벌이 된 두 나라의 2026 북중미 월드컵의 3・4위 결정전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가장 가까운 라이벌 간의 월드컵 3・4위 결정전이라는 역사적 자존심 싸움에서 무려 10골이 터지는 꿀잼 경기로 마무리되었다. 6:4로 승리한 잉글랜드는 승리라는 실리를 챙겼고, 패배한 프랑스는 음바페의 월드컵 최다 득점자라는 명예를 얻었다. 음바페의 신기록 행진이 어디까지 갈지 벌써 다음 월드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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