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과 계파 재편…1980~90년대 자민당 권력지형의 축소판
일본 자유민주당 내 아베 신타로 계파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1980~90년대 정치 지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른바 ‘아베파 사천왕’으로 불린 네 인물은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자민당 계파 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
아베파 사천왕은 모리 요시로, 시오카와 마사주로, 가토 무쓰키, 미쓰즈카 히로시 등 네 명이다. 이들은 아베 신타로의 정치적 후계자로 거론되며 당시 차세대 권력 핵심으로 주목받았다. 이 구도는 다케시타 노보루 계열의 ‘7봉행’과 함께 자민당 내 차세대 권력 경쟁의 양대 축으로 비교되곤 했다.
갈등은 1980년대 후반 국철 분할·민영화를 둘러싸고 표면화됐다. 민영화 반대 입장의 가토와 추진파인 미쓰즈카가 정면 충돌하면서 계파 내부 균열이 시작됐다. 이후 1991년 아베 신타로 사망을 계기로 후계 경쟁은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이른바 ‘산로쿠 전쟁’으로 불린 이 권력투쟁은 가토와 미쓰즈카 간 대립이 핵심이었다. 모리와 손잡은 미쓰즈카 측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계파 내 권력은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가토는 도청 의혹까지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미쓰즈카 지지를 거부한 뒤 결국 계파를 이탈했다. 이후 자민당을 탈당해 신생당, 신진당, 자유당 등으로 이동하며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다 2000년 정계를 떠났다.
미쓰즈카는 총재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대장대신에 기용되며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대장성 스캔들로 사임하면서 정치적 입지는 급격히 약화됐고, 결국 계파 수장 자리를 모리에게 넘기게 됐다.
이후 모리는 자민당 총재에 오르며 아베파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다. 모리 내각은 단명했지만, 이후 고이즈미 내각 시기에도 당내 실력자로서 영향력을 유지했다. 시오카와 역시 재무장관을 맡으며 정책 핵심에 자리했다.
2000년대 들어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면서 미쓰즈카와 시오카와는 2003년 정계를 떠났고, 모리 역시 이후 배후 정치인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다 2012년 정계를 은퇴했다. 아베파 사천왕의 흥망은 일본 정치에서 계파 중심 권력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붕괴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