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회룡사 경내에 들어서면 묵직한 존재감으로 방문객을 맞는 범종이 있다. 청동빛 세월을 품은 범종 표면에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바로 ‘보제고혼(普濟孤魂)’이다.
‘보제’는 널리 구제한다는 뜻이며, ‘고혼’은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제고혼은 ‘외로운 영혼을 널리 구제한다’는 뜻으로, 불교가 지향하는 자비와 구원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범종에는 연꽃과 당초문 등 전통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상단에는 용이 종을 감싸고 있는 듯한 장식이 배치돼 있으며, 이는 하늘과 인간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으로 해석된다. 범종 아래 새겨진 연꽃 문양 역시 번뇌를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의 이상세계를 표현한다.
불교에서 범종은 단순한 의식용 도구가 아니다. 새벽과 저녁 예불 때 울리는 종소리는 중생의 번뇌를 깨우고,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며, 세상 모든 존재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보제고혼’이라는 문구는 전쟁과 재난, 사고 등으로 가족과 후손의 돌봄을 받지 못한 영혼들까지도 자비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불교 정신을 담고 있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살아 있는 이들에게는 성찰의 시간을, 떠난 이들에게는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이 함께 전해지는 것이다.
도봉산 회룡사의 범종은 화려함보다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수많은 세월 동안 산사를 찾은 이들의 기도와 염원을 품어온 범종은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자비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범종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생자와 망자를 함께 품는 불교의 자비정신과 세상을 향한 평화의 울림이 담겨 있었다.
회룡사 범종에 새겨진 ‘보제고혼’의 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