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배운 ‘함께’의 의미
- 에든버러의 밤이 남긴 오래된 질문
사람은 때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배우게 된다. 영국 유학 생활 3개월째, 낯설던 풍경과 언어, 문화가 조금씩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두렵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유학생들끼리도 정이 들고, 홈스테이 가족들과도 웃으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이 열리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더 큰 세상을 향해 움직이고 싶어졌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성. 그리고 세계적인 군악 축제인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 거기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젊은 우리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공부보다 여행 이야기에 더 열을 올렸고, 회비를 걷고 숙소를 예약하며 마치 세상을 정복하러 떠나는 청춘들처럼 들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은 단순한 여행 준비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끼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런던행 기차에 몸을 싣고, 다시 글래스고행 열차로 갈아타던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며 떠들썩하게 즐겼다. 한국의 수학여행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도 영국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항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다 기차가 멈췄다. “기차에 문제가 생겨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처음에는 금방 출발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승객들의 반응이다. 누구 하나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역무원을 찾아가 따지지도 않았다. 어떤 젊은 여성 한 분만 말없이 눈물을 훔쳤고, 옆자리 할머니는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항의가 빗발쳤을 것이다. 환불을 요구하고, 책임자를 찾고, 왜 설명이 없냐고 목소리를 높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묵묵히 기다렸다. 그것이 시민의식인지, 체념인지, 문화인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화내는 방식”조차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에든버러의 밤은 장엄했다. 성벽 위로 울려 퍼지는 군악대의 연주, 대포 소리, 불꽃놀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함성은 마치 거대한 역사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대한민국이 소개되던 순간, 멀리서 터져 나온 한국인들의 함성에 우리도 목이 터져라 소리쳐 대응해주었다. 낯선 땅에서 듣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이상할 만큼 뜨겁고 반가웠다.
그러나 그날 밤, 진짜 여행은 공연이 끝난 뒤 시작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간이역 의자에서 웅크린 채 잠들려는 한 청년을 만났다. 한국에서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이라고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역에서 잔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위험해 보였고, 무엇보다 이국의 밤공기 속에 혼자 남겨진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우리는 그 청년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숙소 주인은 예약 인원보다 한 명이 많다는 이유로 절대 들여보낼 수 없다고 했다. 돈을 더 내겠다고 해도, 사정 이야기를 해도 소용없었다. 언어는 짧았고, 문화는 달랐고, 서로의 기준은 전혀 달랐다. 결국 우리는 숙소 대신 거리에서 밤을 새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피곤했고, 억울했고, 숙박비도 아까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밤은 후회보다 따뜻함으로 남아 있다. 이름도 낯선 청년과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맞이한 새벽은, 화려한 불꽃놀이보다 더 오래 마음속에 남아있다. 여행은 관광지를 보는 일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배웠다.
세상에는 “내 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숙소 주인은 끝내 웃지 않았고, 우리의 사과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섭섭했다.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우리 역시 우리 기준으로만 상대를 이해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문화란 결국 서로의 상식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약속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는 “계약”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함이 남아 있다. 그 이후 그 숙소에서는 한국 손님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때로는 한 나라 사람들 전체의 인상으로 남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무겁다.
우리는 해외에 나가면 개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말 한마디, 약속 하나, 작은 배려 하나가 결국 나라의 얼굴이 된다. 그래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공부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수업이다.
아마 그날 에든버러에서 우리가 진짜로 본 것은 화려한 군악 공연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밤의 미안함과 따뜻함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인생이라는 긴 여행 속에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불꽃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영국 유학기 7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