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은 자기 몸집의 200배나 되는 높이를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한다. 한 시간에 천 번을 뛰어오르고, 자기 몸무게의 수만 배가 넘는 물건도 끌어당기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벼룩도 작은 상자 안에 오래 갇혀 지내면 달라진다. 뚜껑이 있는 높이까지만 뛰는 습관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나중에 뚜껑을 열어주어도 벼룩은 더 이상 높이 뛰지 못한다. 이미 자기 스스로 한계를 배워버렸기 때문이다.
가끔은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돼!”
“힘들어!”
“귀찮아!”
그런 말들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자기 인생 위에 스스로 뚜껑을 덮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20대 후반의 어느 날, 나는 그 뚜껑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영국으로 떠났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시골역 플랫폼에는 뜻밖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저마다의 삶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날의 나는 조금 달랐다. 가슴 속에 작은 떨림 하나를 품고 있었다. 오전 6시 5분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으며 나는 생각했다.
‘1년 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기대와 두려움이 번갈아 밀려왔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그곳에서 나는 잘 견딜 수 있을까.
무엇을 배우게 될까.
그리고 과연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창밖으로 지나가는 새벽 풍경은 잔잔했지만 마음속은 작은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열차는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공 노조 파업으로 원래 계획했던 비행편이 취소된 것이다. 결국 스위스를 경유해 영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는 예정에 없던 ‘SR177’편에 몸을 싣고 스위스 취리히로 향하게 되었다.
외국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만 두근거렸다. 애써 태연한 척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빽빽한 아파트들이 마치 성냥갑처럼 작아지며 멀어져 갔다. 전날부터 쌓인 피로 때문인지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깨어났을 때, 비행기는 이미 중국을 지나 몽골의 고비사막 상공을 날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모래.
또 모래.
그리고 다시 모래.
세상에 저렇게 넓은 황금빛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조차 보이지 않는 광활한 침묵의 땅. 인간의 오만함 따위는 단숨에 삼켜버릴 것 같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런데 그 끝없던 사막이 세 시간 정도 이어진 뒤, 갑자기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푸른빛이었다.
초록 들판과 반짝이는 호수들, 그림책 속에나 나올 법한 작은 마을들이 나타났다. 아마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쯤이었을 것이다. 사막을 지나온 직후라 그런지 그 푸르름은 더욱 눈부셨다. 마치 거대한 캔버스 위에 전혀 다른 색을 한순간에 덧칠해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초원보다도, 끝없이 이어지던 고비사막의 황량함이 더 오래 남았다. 사람은 어쩌면 풍요보다 결핍을 더 오래 기억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11시간의 긴 비행 끝에 비행기는 거친 숨을 몰아쉬듯 스위스 취리히 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피곤함으로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들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입국 심사의 간단함이었다. 한국에서 잔뜩 긴장했던 것이 조금 우스워질 정도였다.
스위스에서의 짧은 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동화 같았다.
루체른에서는 ‘빈사의 사자상’을 만났다. 프랑스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다 희생된 스위스 용병들의 이야기가 새겨진 그 사자상은 돌로 만들어졌는데도 슬픔이 느껴졌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묘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또 붉은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산 ‘필라투스’도 올랐다.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천천히 산을 오르는데,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비현실적이었다. 멀리서는 요들송이 들려오고, 눈 덮인 산 아래로 루체른 호수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마치 내가 영화 속 한 장면 안으로 걸어 들어온 듯했다.
산 아래로 내려온 뒤에는 호수가 보이는 노천 레스토랑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차가운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비로소 긴 여행의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 정말 내가 유럽에 와 있구나.’
다음 날 오후, 다시 제네바를 거쳐 ‘SR836’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6년 7월 12일 오후 7시 30분,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 ‘Maria’의 안내를 받아 다시 버스에 올랐다. 모두들 지친 얼굴로 창문에 기대 있었고, 버스는 영국 남부 해안을 향해 두 시간 반 넘게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닷가의 작은 도시 ‘Bognor Regis’, 그리고 내가 공부하게 될 ‘Chichester Institute of Higher Education’이었다.
캠퍼스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홈스테이 가족들이 유학생들을 하나씩 데려가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학생들이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장면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노예시장에서 팔려가는 기분도 조금 들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그때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운이 좋군요. 그 집은 성처럼 큰 집이랍니다.”
순간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런데 곧이어 내 호스티스가 환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내게 첫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당신은 정말 신이 내린 몸매를 가졌군요!”
순간 나는 머쓱해졌다.
긴장과 피로, 걱정으로 굳어 있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나의 영국 생활은, 예상치 못한 한마디 칭찬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의 영국 유학기-2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