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가디건

흔히들 5월을 가정이 달이라 부른다. 가족과 스승 등 감사를 전해야 할 기념일들이 줄을 잇는 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지만, 요즘의 세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5월 앞에 ‘잔인하다’는 수식어가 더 자주 붙는 듯하다. 화면 속을 채우는 복잡하고 날 선 사건들을 보고 있자면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건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훌쩍 넘었음에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사소한 일렁임에 흔들리고 세상의 소란에 휩쓸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5월의 싱그러움에 기대어 본다. 만지면 금세 터질 것 같은 물오른 새순과 눈부신 연둣빛 잎사귀들 그리고 점차 짙어져 가는 나무의 생명력을 보고 있으면 요동치던 마음도 조금은 차분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5월을 사랑하는 데에는 아주 특별하고도 개인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몇 해 전 5월, 시골의 정취가 좋아 도시 근교의 컨테이너 하우스에 머물던 시절이었다. 내 앞으로 소포 하나가 배달되었다. 상자 속에는 강렬하고도 따스한 빨간 가디건 한 벌과 짧은 메모가 들어 있었다.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제자 경이로부터.” ‘경이’라는 이름을 한참을 되뇌었다. 기억의 타래를 풀어내자 마침내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1983년, 교직에 첫발을 내디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임했던 안일초등학교 때의 제자였다. 대도시 안에 있는 학교였지만 사택이 있을 만큼 외진 곳에 자리했던 그 학교에서 경이는 ‘베다니 농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아이였다. 경이는 특별히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공부가 특출나지도,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교실 한구석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어려운 친구를 조용히 돕던 아이. 나는 그 아이에게 대단한 것을 가르치거나 베풀지 못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한 발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것이 전부였다.

꽃다발 안에 있는 이름과 메시지가 적힌 카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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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어느덧 자라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불현듯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더구나 교직을 잠시 떠나 방황하고,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한국화에 몰두하며 여러 학교를 거쳐 지금의 동경한국학교에 이르기까지 나의 발자취는 참으로 불규칙했었다. 그 파편화된 흔적 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데에 꼬박 석 달이 걸렸단다. 경이는 나를 수소문하던 그 석 달 동안, 딸의 도움을 받아가며 가디건을 한 땀 한 땀 떠 내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된 빨간 가디건이 마침내 내 손에 닿은 것이다. 나는 이 옷을 지금도 차마 입지 못한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혹여나 이 귀한 마음이 닳아버릴까 봐서다. 옷장 한쪽에서 고이 빛나는 이 가디건은 내 삶에서 가장 조용하고도 찬란한 보물이 되었다.

올해 또다시 스승의 날을 맞이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5학년 아이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올해는 경이의 빨간 가디건에 더해 또 하나의 따뜻한 기억이 내 가슴에 덧대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잔인한 소식들로 가득하지만, 나에게 5월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 사람에게 닿는 달’이다. 가디건의 붉은 실눈 속에 담긴 제자의 진심을 복기하며 나는 이 계절이 충분히 따뜻하다는 사실을 새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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