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늙은 농부와 늙은 소, 그 둘이 나누는 느리고 조용한 동행의 기록이다. 시청하는 순간 나는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들어 보았다.나는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두 해 동안이나 혼자서 농사를 지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시간들이지만, 그 시절 내 곁에는 늘 누렁이가 있었다. 농사일을 도맡아 하던 우리 집 늙은 암소, 그리고 그의 목에 달린 작은 방울, 워낭 소리. 그 소리는 아직도 내 기억 속 어딘가에서 낮고 둔탁하게 울리고 있다.
요즘 들어 이상하리만치 어린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기억은 흐릿해지는데, 모습들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소를 타고 심부름을 다니던 소설 속 이야기 같지만 분명 나의 기억에 아련히 남아 있는 일이다. 송아지를 팔고 돌아오는 길, 며칠 동안 어미소와 함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슬퍼하던 날들. 그 큰 눈망울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아직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 집 누렁이는 나보다 우리 논과 밭의 길을 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고삐를 잡지 않아도, 누렁이는 늘 제 갈 길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요즘은 어쩐 일인지 시간도, 활력도 늘 모자라 피곤한 느낌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이야기들이 내 안에는 수없이 남아 있는데 그 시절의 기억들을 한 번쯤은 제대로 정리해 보고 싶어진다.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워낭소리〉 속 최노인은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다. 그에게는 서른 해를 함께한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이 보통 열다섯이라는데, 그 소는 마흔 살을 넘겼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그 소는 최노인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고의 농기구이며, 유일한 자가용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이지만 소 목에 달린 워낭 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알아듣는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몸으로도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같이 산을 오른다. 소에게 해가 될까 봐 논에 농약조차 치지 않는 고집스러운 사람. 그리고 소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면서 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처럼 쌓인 나뭇짐도 묵묵히 짊어진다. 말이 없는 노인과 표정 없는 소. 그러나 둘이는 누구보다 깊이 이어진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노인은 수의사로부터 소가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문득 우리 집 늙은 소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누렁이와 함께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을 꺼내어 본다. 누렁이의 워낭 소리는 이제 사라졌지만, 그 소리가 남긴 울림은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계속 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