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자 ‘魚偏’이 보여주는 고밀도 문자 체계…

일본 스시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어종 표기 체계를 모아 둔 한 장의 표는 한자가 가진 정보 압축 능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참치(鮪), 도미(鯛), 정어리(鰯), 고등어(鯖), 장어(鰻), 대구(鱈)처럼 글자 왼쪽에 항상 ‘물고기’를 뜻하는 魚가 배치되고, 오른쪽에 각 어종을 구분하는 요소가 붙는다. 시각 구조만으로 “이 단어는 물고기 계열이다”는 정보와 개별 종의 차이가 한 번에 인식되는 방식이다.

일본어는 동음어가 많은 언어다. 동일하게 ‘たい’, ‘いわし’, ‘さば’라고 들리더라도 한자가 표기되는 순간 혼동 없이 뜻이 정리된다. 도매시장 전표나 식당 메뉴판, 수산·요리 문헌이 지금도 난자(難字)를 감수하며 한자를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자 학습 부담과 디지털 환경에서의 처리 난점에도 불구하고, 한자는 복잡성을 대가로 고도의 정보 압축·전문화·분류 기능을 제공하는 문자 시스템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 관점을 한국어 화자에게 옮겨 보면, 한글과 한자를 함께 다루는 능력은 사실상 “두 개의 엔진”을 장착한 것에 가깝다. 한글은 학습이 빠르고 표현력이 뛰어난 표음문자이며, 여기에 ‘자유(自由)’, ‘책임(責任)’, ‘공동체(共同體)’, ‘문명(文明)’, ‘경제(經濟)’, ‘교육(敎育)’ 등 핵심 개념어의 한자 구조를 이해하면 어휘의 뜻뿐 아니라 어원·사상사·동아시아 공통 개념망까지 한 번에 읽힌다.

이 능력은 단순한 고전 문자 취미를 넘어, 지식 접근 속도, 일본어·중국어 학습 난이도, 정책·학술 용어의 정밀한 의미 구분까지 영향을 주는 현실적 경쟁력으로 작동한다. 한자를 아는 한국인은 일본어·중국어 자료에서도 상당 부분 의미 구조를 즉시 파악하며, 추상적 개념의 미세한 차이까지 스스로 걸러낼 수 있다.

이 때문에 공교육에서 한자 교육을 일률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은 “암기 부담을 줄이자”는 논쟁을 넘어, 이미 갖고 있는 언어적 이중 엔진을 스스로 제거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다 바람직한 방향은 한글 중심 체계를 유지하되, 기본 부수(예: 魚偏), 핵심 어근, 필수 한자어, 일본어·중국어 기초 독해를 연계하는 전략적·선택적 한자 교육으로 재설계하는 접근이다. 한자의 장점은 극대화하면서 과도한 암기나 계층 격차는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한글과 한자를 함께 이해하는 독자가 문자·언어·문명 인식 능력을 아우르는 고급 독해자로 성장할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한다. 동아시아 기록 문화를 아우르는 이중 문자 체계 활용 능력은, 글로벌 지식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에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역량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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