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과 L의 불편한 동거 2 –
지난 호 칼럼에서 rice-lice와 같은 R과 L로 된 음소로 인한 의미 차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rice-lice와 같은 경우는 가벼운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겠지만, read-lead의 경우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곤란한 경우였다. right-light 또한 음소(phoneme)가 포함된 문장을 설명할 때 좋은 예시가 된다. right의 의미가 명사로서 <권리, 인권>의 의미가 있고, 형용사로서 <옳은, 맞는>의 의미가 있는 데 반해, light는 명사로서 <빛, 조명, 광선>의 의미가 있으며, 형용사로서 <가벼운, 적은>의 의미가 되어 두 단어는 음소인 r과 l만 다를 뿐인데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어떤 상점에 가서 “Show me the right one.” (나에게 옳은/오른쪽 것을 보여주세요) 이라고 해야 할 상황에 “Show me the light one.” (나에게 가벼운/밝은색인 것을 보여주세요) 이라고 가게 주인에게 이야기했다고 치자. 첫 번째 문장에서 ‘right’는 ‘옳은’ 또는 ‘오른쪽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여러 선택지 중에서 정답이거나 오른쪽에 위치한 것을 보여달라는 뜻이다. 반면, 두 번째 문장에서 ‘light’는 ‘가벼운’ 또는 ‘밝은 색상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무게가 적게 나가거나 색이 연한 것을 보여달라는 의미로 전혀 다른 뜻의 문장이 된다. 그래서 가게 주인이 진열대에 있는 right one 즉 오른쪽 제품을 외면하고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가벼운 것을 들고 와서 “Here, you are. (여기에 있습니다)”라며 원치 않는 물건을 당신에게 들이민다고 생각하면 어떤 마음일까?
음소(phoneme)를 언급하면서 ‘영어를 잘한다’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중고등학교 영어 성적? 수능 영어 성적? 토플 성적? 토익 성적? <영어 10년(중고등~대학교)을 공부하고도 영어를 못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그토록 많은 영어를 배우고도 영어를 못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학교 교육은 결국 성적 위주의 교육이었고, 학생들은 영어 벙어리가 된 것이다. 적어도 음소(phoneme)로 의미를 축소하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이다.
과거에 박찬호선수가 LA dodgers에서 야구 선수를 했고, 요즘에는 손흥민선수가 LA FC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LA 교민들께 엄청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한 박찬호선수였고, 손흥민선수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 뉴스에서 아나운서들의 LA 발음에서 많은 불편을 느낀다. LA를 [엘레이]라고 발음하지 못하고, [에레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찬호선수가 패전투수가 되면 아나운서들이 LA Dodgers를 [에라이 다졌어]라고 발음해서라는 웃픈 풍자가 있었다. 유창하진 않을지라도 정확성이 더 중요한 이유다.
또한 자동차 문화에서 주차 보조를 해주는 사람들이 후진 주차하는 상황에 백(back)으로의 의미로 [빠꾸]라고 하는 것과, 괜찮아요 계속(alright)의 의미로 [오라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종성발음을 못하는 일본 사람들의 발음을 그대로 차용하여 쓰는 일본식 외래어다. television(텔레비전)도 일본인들은 종성 발음이 안 되기에 [테레비져느]라고 해야 하니 너무 길어서 축약하여 발음한 것이 [테레비]이다. 종성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 사람들이 굳이 종성 발음을 못 하는 일본 사람들의 발음을 흉내 내는지 필지는 지금도 이해를 못 한다. 게다가 plaza를 [플라자]라 하지 않고 [프라자]로 발음하거나, Tou les Jours를 [뚤레쥬르]라 하지 않고, [뚜레쥬르]라고 발음은 필자에게 그저 웃픈 현실이다.
그렇다면 헷갈림의 끝판왕이 R과 L 발음을 확실히 구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L은 우리말로 설측음이라 하여 신라[실라]처럼 양 리을 발음 즉 앞 음절과 뒤 음절 모두 L[ㄹ]발음이 들어가면 된다. R 발음은 혀를 뒤로 당기면서 동시에 혀끝을 입천장에 닿지 않게 말아 주며 발음하되, 입 모양은 입술을 살짝 동그랗게 앞으로 내밀면서 발음하면 된다. 발음 연습으로 입 모양과 혀의 위치를 생각하면서 water, computer, run, red, right, road를 발음해 보자. 설측음 L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말 진로, 선로, 신라와 함께 light, lounge, look, love, light, lake를 발음해 보면 혀가 잇몸에 짝 달라붙어 나는 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단어의 의미를 구별해 주는 최소 단위가 음소인 것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대립쌍들을 연습해 보자: right/light, correct/collect, fry/fly, rice/lice, wrong/long.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고 쉬워보이는 바다/파다, 불/풀, 발/팔, 병/평, 반/판, 입/잎 등은 한국의 음소에 의해 구별되는 단어들이다. 한국인이 R과 L을 구별하기 힘든 것보다, 외국인이 우리말 음소 /ㅂ/과 /ㅍ/이라는 음소 구별에 훨씬 더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 R과 L을 어려워하는 한국 사람에게 작으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주. 그림 설명: <right one>이라고 해야 할 것을, <light one>이라고 해서 생기는 해프닝. 소녀는 (마음으로) 오른쪽 인형을 원했으나, 주인은 소녀의 요청대로 가벼운 인형을 가지고 온 상황임.
칼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