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언제나 스승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 위에서 사람은 겸허해지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더 깊어진다. 1,200여 년 전, 그 바다 위에서 신라의 청년 장보고와 일본의 구법승 엔닌이 같은 하늘 아래 서로의 정신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장보고를 ‘해상왕’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의 진짜 위대함은 단순히 동아시아의 무역을 장악한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배움과 교류의 가치를 실천한 교육자적 정신’에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장보고를 ‘해도인(海島人)’이라 불렀다. 바다의 섬에서 출발한 한 젊은이가 불가능에 가까운 길을 열어 신라와 일본, 당나라를 잇는 문명의 항로를 만든 것이다. 신분의 한계를 넘어 학문과 기술, 신앙과 문화를 교류한 그는, 단지 상인이 아니라 배움의 길을 개척한 교육의 선각자였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그를 ‘長寶高’, 곧 ‘보배로운 높은 이’로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신라에서는 반역자로 몰려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적산명신’, 즉 ‘부의 신’으로 현재도 추앙받고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평가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배움의 시선, 타인의 가치를 바라보는 마음의 깊이가 달랐던 것이다. 일본의 구법승 엔닌은 장보고를 평생 흠모했다. 그는 견당선을 타고 험난한 항해 끝에 당나라에 도착해 불법을 배우고자 했다. 그러나 풍랑과 난파, 외로움 속에서 그가 진정으로 배운 것은 사람의 인연과 도움 그리고 겸손의 공부였다. 귀국길에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에서 머물며, 그는 장보고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향했는지를 체험했다. 그리고 귀국 후, 장보고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직 뵙지는 못했으나, 이미 마음은 대사를 알았습니다. 먼 곳에서 인덕을 입사오며, 흠모의 정은 더해만 갑니다.”

한 시대의 권력자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만, 한 시대의 스승은 인간의 마음속에 남는다. 엔닌에게 장보고는 그런 스승이었다. 그가 배운 것은 부와 권력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신뢰와 나눔의 정신이었다. 오늘의 교육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진정한 교육은 시험 성적이나 명문대 합격이 아니라, 다른 이의 가치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에서 시작하여 삶의 의미를 배우고, 세상과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장보고가 바다를 통해 세 나라를 잇고, 엔닌이 그를 통해 인간의 품격을 배웠듯이, 우리의 교실도 서로의 다름을 배우고 이해하는 바다와 같아야 한다. “당신에게 장보고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저 옛날의 해상왕으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움으로 세상을 바꾼 첫 번째 스승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진로 교육은 단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이끄는 과정이 아니라, 어떤 삶의 자세로 세상과 만날 것인가를 배우는 여정이다. 장보고가 배움을 통해 세 나라를 잇고, 엔닌이 그에게서 인간의 품격을 배웠듯이 학생들 또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학교의 진로 교육이 단순한 ‘진로 탐색의 시간’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장보고처럼 새로운 바다를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고, 엔닌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며 성장해 가기를 소망한다. 바다는 그들의 시대보다 훨씬 넓어졌지만, 진정한 배움의 바다는 여전히 우리 마음 안에 있다. 그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 있는 청소년들이 곧 미래의 장보고요, 새로운 시대의 스승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