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열린 AI 행사에 참석했다. 수많은 기업과 연구소, 스타트업이 각자의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지만, 그날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의외로 한 그라비아 아이돌의 발표였다. 그녀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을 ‘AI 콘텐츠 프로듀서’라 소개했다. 스스로 회사를 세우고, 자신의 사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영상을 만들며, 사진집과 굿즈까지 제작·판매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놀라움을 넘어, AI가 연예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시점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라면 촬영 장소를 섭외하고, 의상과 조명을 준비하고, 후반 편집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본인이 허락만 하면, AI가 무한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소속사도, 거대한 예산도 필요 없다. 한 명의 창작자가 곧 하나의 콘텐츠 기업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변화는 단지 그라비아 아이돌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지하 아이돌, 신인 배우, 프리랜서 모델 등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AI를 활용해 자신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일본처럼 중소기업이 많은 나라에서 특히 큰 의미를 가진다. AI는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깊이가 경쟁력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나는 그날,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최근 AI 기술로 개인의 얼굴을 기반으로 한 피규어나 3D 이미지가 손쉽게 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AI 기반 디지털 피규어 산업이 곧 새로운 시장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라비아 아이돌이 자신의 AI 데이터를 이용해 피규어나 포스터, 영상 콘텐츠를 자동 생성하고 판매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생태계가 탄생할 것이다.
일본은 AI 도입 속도만 보면 서구보다 느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는 정확함과 신뢰성이라는 일본 특유의 강점이 숨어 있다. 기술을 급하게 흡수하기보다,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틀을 갖추어 천천히 확산시키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더 단단한 경쟁력을 만든다. 특히 애니메이션·게임 산업처럼 창의성과 장인정신이 결합된 분야에서는 AI와 일본의 만남이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크다.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AI가 채색, 배경, 작화의 일부를 지원하게 된다면, 적은 인력으로도 더 높은 품질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일본이 가진 방대한 원화 데이터와 장인들의 노하우가 AI와 결합된다면, 일본 콘텐츠의 경쟁력은 다시 세계 최정상으로 올라설 것이다.
이제 정말 본격적인 AI 레이스가 시작됐다. AI를 ‘금지’하거나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 정식 교과로 AI 활용법을 가르치고, 초등학교 때부터 창의적 데이터 사용 능력을 키워야 한다. AI는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여는 도구다. 일본이 이 문을 열 때, 세계는 또 한 번 ‘Made in Japan’의 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