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의 경고, 그리고 일본 사회의 태도

8월 28일 저녁, 나는 우연히 TV를 켰다가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아사히 TV에서 “거대 지진은 반드시 온다! 간토 직격 X데이”라는 경고를 본 것입니다. 수도 도쿄와 도쿄만 일대를 향해 “6개월 내 대지진이 닥칠 수 있다”는 선언 같은 경고가 전파를 타고 흘렀습니다. 공영방송에서 내보낸 내용이라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수도권을 강타할 대지진이 곧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황금 시간대에 공중파 방송이 전한 것입니다. 전 도쿄대 지진연구소[우다 신이치]씨까지 동원하여 피해 규모가 1995년 [한신대지진]에 필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내 놓았습니다. 과학적 근거도 이어졌습니다. [사가미]만에서 연이어 관측된 지진, 해수 온도의 상승 그리고 바닷속 심해어들의 잇따른 출현 등. 일본의 속설처럼 “심해어가 나타나면 큰 지진이 온다”는 불길한 징조가 이번에는 전문가들의 분석과 맞물려 무겁게 다가옵니다. 더구나 1923년 간토대지진과 1703년 겐로쿠대지진 모두 같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경험이 그 불안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도쿄만에는 10미터를 넘는 쓰나미가 닥칠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A tsunami waves crash into a coastal town, submerging cars and threatening nearby buildings, with fishing boats visible in the background.

문제는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는 외부적으로 너무나 조용하다는 것입니다.놀랍도록 담담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빈도의 대형 재해를 겪어왔고 또 앞으로 반드시 닥칠 재앙을 예측하면서도 일상에 묻어버리는 듯한 태도는 외국인으로서의 눈으로는 경이로우면서도 우려스럽기까지 합니다.물론 내부적으로 많은 준비를 하고 있고 대비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밖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집니다. 체념과 담대함은 한 끗 차이입니다. 사회 전체가 ‘지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며 체념한다면 결국 대비와 경계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염려도 해 봅니다.

재난 이후의 해안가 풍경, 파손된 건물과 쓰레기가 가득한 지역. 보트 한 척이 잔해 사이에 놓여 있다.

사실 일본은 축복과 저주의 양면을 동시에 지닌 땅이라고 느껴집니다. 넓은 국토와 비옥한 평야 그리고 적당한 자원까지 갖췄지만 그와 함께 지진과 태풍,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의 위협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은 풍요와 재앙을 동시에 주었고 일본 사회는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여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숙명론은 해법이 아닙니다. 치밀한 대비와 국제적 협력만이 재앙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도쿄의 레인보우 브리지와 야경이 어우러진 모습, 분수에서 나오는 조명이 빛나는 밤 풍경.

이 방송이 나간 날이 하필 우리 민족의 국치일이었다는 점은 여러 생각을 불러오게 합니다. 명성황후 국장 기록 반환 문제, 독도문제, 위안부 문제 등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자연재해라는 공통의 위험 앞에서도 두 나라가 협력보다는 어쩌면 불신을 쌓아가는 느낌을 주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대지진의 경고는 일본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 역시 무관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불편한 역사와 정치적 갈등이 쌓여 있는 지금 양국은 재난 대응과 같은 인류적 과제를 계기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연은 국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재앙 앞에서 인간이 할 일은 겸허함과 대비 그리고 이웃과의 협력입니다.

일본 지진 이후의 파괴된 풍경, 잔해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

도쿄의 밤거리를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에 잠겨봅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러나 그 작은 존재들이 서로 손을 내밀고 살아갈 때 비로소 재앙의 파도마저 조금은 덜 아프게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도쿄의 빛나는 불빛 아래서 불안과 평온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을 안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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