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일본 전역은 ‘고시엔’이라 불리는 전국 고교야구대회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4,300여 개 고등학교가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하고, 단 한 번의 패배로 꿈이 좌절될 수도 있는 리그전의 긴장감 속에서 매일같이 땀과 눈물의 드라마가 이어진다. 그 무대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고교생들의 꿈과 희망이 온몸으로 부딪히는 ‘젊음의 축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 대회의 특징은 단위 고교 대항전이 아니라 지역 대표 자격으로 고교가 선정되고 어쩌면 지역 대항전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대표 고교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가 하나가 된다.

2024년도 여름대회의 결승전은 특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남겼다. 오사카의 한국계 고등학교(교토국제고)가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교가가 운동장에 울려 퍼지고 NHK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교토국제고의 교가가 ‘동해 너머’로 시작되는 한국어 가사였기 때문이다. 낯설지만 힘차게 울려 퍼지는 그 노랫소리는 단순한 승리의 노래가 아니라, 뿌리와 정체성을 지켜내며 꿈을 향해 달려온 젊은이들의 열정 그 자체였다.

(2023년 고시엔 야구장 – 코로나 시기라 마스크를 착용하고 응원하고 있다)
고시엔은 선수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안겨준다. 결승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며, 본선에 나간 팀은 경기 후 운동장의 흙을 담아 가 청춘의 기록으로 간직한다. 그 흙 한 줌이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자신이 흘린 땀과 젊음의 시간을 증명하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고교야구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까닭은 바로 이런 ‘꿈의 흔적’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승패는 순간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노력과 경험은 평생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도쿄대표님과 홋카이도 대표팀이 15회 연장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월요일에 재경기를 치렀던 2006년 결승전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투지는 꿈이 어떻게 현실로 다가오는지를 보여준다. 2연 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홋카이도 대표와 일본 야구계의 대부 왕정치 감독의 모교인 와세다실업고(도쿄대표)가 2006년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연장전까지 치르고도 1대 1로 승패를 가리지 못해 월요일에 재경기를 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4대 3으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와세다 쪽에서는 온통 환호성으로 운동장을 메웠다. 그 웃음을 뒤로 하고 눈물을 흘리는 홋카이도 대표 학생들의 표정이 오히려 가슴을 찡하게 했다. 왕정치 감독의 모교이기도 한 와세다는 이번에 왕 감독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겠다고 경기 시작 전부터 각종 메스컴을 통해 각오를 다졌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 고교야구 대회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크다. 한국에도 봉황기, 청룡기 같은 고교야구 대회가 있지만 고시엔이 보여주는 문화적 무게와 사회적 울림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청소년들의 ‘꿈을 키우는 무대’를 더욱 넓혀 줄 필요가 있다. 야구뿐만 아니라 예술, 과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열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러나 그 젊음이 꿈을 만나고, 도전의 무대를 통해 빛을 발할 때 비로소 사회 전체가 감동을 얻는다. 고시엔의 흙 한 줌에 담긴 고교생들의 땀과 눈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청소년들의 꿈을 존중하고 키워주어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만드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