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칼럼 40> 유럽 여행을 마치고 2

첫 유럽 여행이다 보니 이탈리아와 스위스 여행의 여운이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뜨겁고도 길게 드리운다. 그래서 이번에도 두 나라의 여행담을 중심으로 비교 감상을 하고자 한다.

이탈리아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한국인만 따로 떼어서 마치 이탈리아 내국인처럼 간소하게 통과했다. 이건 뭐지 싶을 정도로 자국에 도움이 되는 다수의 여행객이라면 이런 친절은 제도적으로 베푼다는 정책이 있는 듯했다. 이러한 기조는 여행지 곳곳에 이탈리아어와 영어의 병기는 기본으로 하고, 제3 언어가 있을 자리에는 어김없이 한글이 등장했다. 그들의 배려도 인상적이었지만 한국의 위상이 그렇게 높아졌음을 온몸으로 체감한 여행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진입하면서 느낀 충격은 영업용 SUV와 같은 차량을 제외한 자가용은 한국의 모닝 혹은 티코로 상징되는 소형차들이 절대다수였다. 도심의 거의 모든 건물이 기원전부터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보니 거리의 모든 것들이 유물인지라 소위 재건축이라던가 도심 재구성과 같은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하는 유적의 도시였다. 건물은 육중하고 도심의 분위기는 육중한 건물의 기운에 눌려 묵직하였다. 그에 비해 차량은 어찌나 귀여운 차들로 가득한지…. 세계 각지의 소형차들 전시장 같은 거리의 차량 풍경은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처세하는 이탈리아인들을 보며, 소위 ‘하차 체면’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체면용 대형 승용차들은 일종의 문화 충격(culture shock)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등 다양한 걸작들은 이탈리아의 조각 천국 또는 조각 대국이라고 할 만하다. 어디를 가든 광장이든 건물이든 조각상이 필수품처럼 널려있다. 조각 없는 건물이나 거리의 광장을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조각 천국을 넘어 조각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전국에 널려있는 듯했다. 아울러, 이들의 손재주는 구찌와 프라다 등 명품의 나라가 되었고 진정한 선진국은 물질의 풍요보다 저런 문화 대국이 선진국임을 느끼게 하는 여행이었다. 저런 명품 소비 1위가 한국이라면 이는 오명일까? 자부심일까?

스위스는 시골이든 도시든 어디를 가던 풍경화였다. 전통 가옥도 현대 건축도 한결같이 자연 친화적이다. 목가적이고 평온하고 평화롭다. 이탈리아에서의 소매치기 경계령으로 여행 만족도가 반감되었다면, 스위스는 상대적으로 안도와 평온 자체였다. 이탈리아가 여행으로는 좋지만, 소매치기 등의 이미지로 인해 살기에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었으나, 스위스는 오래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특히 융프라우 같은 여름 속 겨울 설산을 즐기는 묘미는 여행의 절정이었다. 스위스에서의 단점은 물가가 비교적 비싸고 화폐가 유로가 아닌 스위스프랑을 사용하여 여행객의 처지에서는 다소 불편한 정도였다. 어느 식당에서는 햄버거 하나에 5만 원 정도였으니 익히 알고 있는 스위스의 고물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스위스에서 첫 식사를 하기 전까지만 스위스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스위스에서의 특이점은 독일어의 영향이 큰 나라여서인지 /J/발음이 영어와 같은 [ㅈ] 즉 [ʒ] 발음이 아니라 [으] 즉 [j] 발음이다. 그래서 본인의 영어 성인 Jung을 영어에서는 [정][ʒʌɳ] 으로 발음하지만, 독일어계인 스위스어에서는 [융][juɳ] 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이러한 언어학적 차이를 미리 알고 있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성을 Jung 대신에 Chung으로 작명하여 여권이나 논문 등의 공식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은 이미 논문과 여권에서 Ju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뒤 외국인이 본인에게 [융]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경험하고서야 /J/가 출신국에 따라 [으]와 [ㅈ]으로 발음되는 것을 알았기에 외국인을 만나면 나의 이름을 먼저 발음해 주어 혼란을 예방하고 있다. 역으로 외국인을 볼 때 /J/발음을 어떻게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스위스 등 독일계인지 영국계인지를 알 수가 있다. 영어학도에게 덤으로 주어지는 특혜이기도 하다. 유럽의 언어 변천에 관한 자극을 받은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본인이 아내 및 큰딸 부부와 함께 떠난 이번 유럽 여행 중 개인적으로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은 스위스 여행에서 만난 부산에서 온 초등학생 남매의 가족이었다. 학원 문화로 인해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을 하는 가족의 모습은 너무도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이들 가족처럼 학생들이 투자하는 학원비를 아껴 온 가족이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을 통해 느끼는 가족애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으리라.

이제는 우리나라도 학생들이 지적 성장과 승부에 메몰되지 말고 심신이 건강한 젊은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밥상머리 교육과 온 가족여행을 하면서 이들이 심신이 건강한 어른이 되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된다면 우리의 사회 또한 건강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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