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케데헌’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솔직히 무슨 신조어인가 싶었다. 십 여 년 전, ‘태티서’라는 그룹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태티서’라는 말에 ‘서씨?’ ‘미국에 사는 교포 가수?’ 같은 엉뚱한 상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케데헌’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건 뭐지? 알고 보니 케이팝의 ‘케’, 데몬 헌터스의 ‘데헌’. ‘K-Pop Demon Hunters’의 줄임말로, 2025년 6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일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제작의 뮤지컬 판타지 애니메이션이었다.
이 작품은 세계적인 K팝 걸그룹 ‘HUNTR/X’의 멤버들이 무대 밖에선 악마 사냥꾼이라는 이중생활을 하는 내용이다. 음악과 액션, 성장서사까지 담아낸 이 이야기에는 한국의 케이팝 세계관, 일본의 애니메이션 연출력, 미국의 글로벌 배급망이 모두 결합되어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적대 세력 ‘Saja Boys’는 지하 세계의 악마 ‘Gwi-Ma’에게 조종당해 세상을 위협하고, 주인공들은 음악을 통해 악마를 봉인하고 팬들을 지켜낸다. 단순한 판타지물이 아니라, 음악의 힘과 문화적 상징을 활용한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이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의 제목을 봤을 땐, 웃음이 먼저 났다. ‘케이팝도 그렇고 데몬 헌터스도 그렇고 너무 유치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마치 중학생들이 좋아할 법한 콘셉트 같았기 때문이다. 사자보이스 추모 영상 같은 게 알고리즘에 떠서 살짝 눌러보긴 했지만, 끝까지 보기엔 망설여졌다. 그러나 이 작품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특히 내가 신뢰하는 미국의 한국인 연구자가 서울대 미팅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다며, 재미있어서 두 번 보고 OST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 신뢰의 무게가 작품에 대한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이 작품은 공개 5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 시청 순위 상위권을 기록했고, OST ‘Golden’은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에 오르며, 음악 면에서도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 K팝을 단지 소재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내러티브의 힘이 되는 구성은 이 작품의 강력한 차별점이다.
나는 아직 넷플릭스 멤버십이 없어 이 작품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케데헌’은 의미가 크다. 한국은 케이팝이라는 독보적 문화 콘텐츠를 창조하고, 일본은 이를 애니메이션화하며 시청각 세계를 확장하고, 미국은 이를 전 세계에 유통하는 효율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삼자 협력은 단순한 문화 수출이 아니라, 콘텐츠 공동 창작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다.
‘케데헌’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동아시아와 북미를 아우르는 새로운 글로벌 문화 동맹의 예시다. 음악과 이야기,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넘어, 협업의 방식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되는 시대. 앞으로도 이런 콜라보레이션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작품을 직접 보게 되는 날, 이 첫 인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입견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