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미국 대학 교수, 그리고 포닥 시절 지도교수와 한자리에 모였다. 세 연구자가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느낀 가장 큰 공통 화두는 “닫히는 문(door‑closing)”이었다.
먼저 미국. 새 행정부 출범 뒤 연방 연구비가 한복판에서 끊기는 사례가 속출한다. 특히 기후변화·다양성·성평등을 다루는 과제는 ‘이념 검열’에 걸려 중단되기 일쑤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내부 직원들은 “심사와 무관한 정치적 거부권이 생겼다”고 토로한다.
정책신호는 자금만이 아니다. 미국인 학생만 뽑으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과 함께, 행정부는 F‑1 학생비자에 최대 4 년 시한을 두는 규정도 재추진 중이다. 연구실은 지원자를 잃지 않으려 과제 제목과 초록을 바꾸는 편법까지 고민한다.
국제 협업의 몰락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 박사과정의 40 % 가까이를 차지해 온 인도·중국 유학생 흐름이 꺾이면, 실험실·벤처·학술지 생태계가 순환 고리를 잃는다. ‘탈(脫)미국’ 연구 클러스터가 유럽·아시아에서 급속히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들린다.
일본도 주말 선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극우 성향 산세이토(参政党)가 “일본인 퍼스트”를 외치며 의석을 14석까지 불렸다. 외국인 토지취득 규제, 지방참정권 불허, 이민 축소가 핵심 공약이다. 동시에 자민·공명 연립은 참의원 과반을 잃었다.
문제는 현실과의 괴리다. 현재 일본 거주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3 % 남짓이지만, 간병·농업·외식 등 기피 산업의 현장에선 외국인이 5명 중 1명꼴로 일한다는 통계가 나온다. 인구감소·고령화 속에 국적을 가려 뽑겠다는 발상은 경제의 ‘마지노선’을 건드릴 공산이 크다.
미국의 연구 검열과 일본의 이민 배타성은 표면적으로 다른 이슈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국가 우선”이라는 정치 구호가 과학과 경제의 연결망을 자해(自害)하는 모순을 보여 준다. 연구·인재·노동이 국경을 넘어 흐르지 못하면, 지식의 속도가 둔화되고 사회적 혁신도 멈춘다.
세계는 이미 복합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위기, 팬데믹, AI 윤리 등 어느 하나도 단일국가의 해법으로 풀 수 없다. 자신과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정치가 잠시 표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든 이가 패자가 된다.
학술공동체와 시민사회가 할 일은 명확하다. 연구비와 이민정책의 변화를 면밀히 기록하고, 학문·노동의 국경을 지키려는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지식의 자유 이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기 때문이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