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송원서 / NKNGO Forum 대표,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일본에 살게 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의 교육 환경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던 내게,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보게 된 일본의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시스템은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그러나 낯섦은 곧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일본 사회와 문화, 교육 현장을 아이를 통해 간접 경험하며 이해의 폭을 점차 넓혀간 것이다.
나는 17년간 살았던 츠쿠바를 떠나 도쿄로 이주하면서, 큰아이의 전학 문제로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아는 이가 전혀 없는 새로운 학교 환경에서 다른 학부모들과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초등학교 PTA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 번도 노래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으나, 낯선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목소리를 맞추는 경험은 내게 신선하고도 값진 체험이었다.
합창단은 매년 합창 콩쿠르에 참가해왔고, 내가 처음 연습하게 된 곡은 ‘군조(群青)’라는 합창곡이었다. 이 곡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한 중학교에서 졸업생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교사가 작곡을 했다고 한다. 악보도 복잡했고, 연습 과정에서 악보의 동선도 익숙지 않아 진땀을 빼기 일쑤였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사가 너무나도 애절했다. 먼저 떠나보낸 친구와의 추억, 그리고 희망이 교차하는 노랫말은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연습 시간이 거듭될수록,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내가 겪었던 혼란과 감정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돌보며 겪었던 생활상의 변화, 원전 사고로 인한 식자재 불신, 매일같이 쏟아지던 불안한 뉴스들까지…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이 지난 시간을 생생히 불러냈다. 그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고, 합창 연습 시간이 힘겹게 느껴진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14년이 흘러, 올해도 어김없이 3월 11일이 찾아왔다. 일본 사회는 추모 분위기에 잠겼고, 나는 다시금 그날을 떠올렸다. 방사능 문제로 국민적 경각심이 높아졌던 기억, 수많은 이재민이 겪어야 했던 불편한 삶, 그리고 이후 점차 ‘잊혀져가는’ 듯한 씁쓸함까지. 동시에, 1995년에 일어난 한신·아와지 대지진 역시 여전히 추모를 이어가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자연재해가 잦은 이 땅에서 추억과 상처를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실감했다.
올해는 둘째 아이 역시 초등학교를 졸업하여 PTA 합창단 활동도 마무리하게 되었다. 합창단에서 내가 느낀 ‘함께 목소리를 모으는’ 행위는, 일상의 가벼운 위로부터 엄청난 재해까지도 함께 극복해나가려는 일본인의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는 신중함과 연대의식이 일상 속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그러한 점이 사람들의 성격과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러나 아물지 않은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도 “앞으로 또 어떤 지진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준비’하고 ‘함께’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여기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싶다.
3.11 동일본 대지진 14주기를 지나며, 다시 한번 그날을 기억하고 앞으로도 계속 마주할 자연재해의 무게를 실감한다. 우리의 일상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함 위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노래하듯 호흡을 맞추어 일어나려 애쓰는 노력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기억과 추모는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이다.
함께 부르는 합창곡이 주는 울림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모으고 귀 기울임으로써 더 나은 내일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군청
작사: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립 오다카중학교 (2012년 졸업생)
작곡: 오다 미키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립 오다카중학교 교사)
아아, 저 마을에서 태어나 너를 만나
수많은 감정을 품고 함께 시간을 보냈지
이제 떠나는 날, 비치는 풍경은 다를지라도
머나먼 곳에서 너도 같은 하늘을
분명 올려다보고 있겠지
“또 보자” 하고 손을 흔들지만
내일도 만날 수 있을까
멀어지는 네 미소, 지금도 잊지 못해
그날 보았던 노을, 그날 보았던 불꽃놀이
언제나 네가 있었지
당연함이 곧 행복이라는 걸 알았어
자전거를 밟으며 너와 함께 갔던 바다
선명했던 기억이
눈을 감으면 군청빛으로 물들어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우리 곁을 지나고
삼월의 바람을 맞으며, 지금도 널 떠올려
울려 퍼져라, 이 노랫소리
멀리까지 울려라, 저 하늘 너머까지도
소중한 모든 것에 닿기를
눈물 흘린 뒤에도 올려다본 밤하늘에
희망이 반짝이고 있어
우리를 기다리는 군청빛 거리에서
아아—
분명 다시 만나자
저 마을에서 만나자, 우리의 약속은
사라지지 않아, 군청빛 인연
다시 만나자
군청빛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