젋었을 때 덴마크의 코펜하겐을 여행하던 어느 겨울날, 차가운 바닷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날 나는 많은 이들이 찾는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여행자들의 안내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작은 동상은 사실 기대와는 달리 소박하고 작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다와 어우러진 인어공주의 모습은 저를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게 했습니다.

바닷가에 홀로 앉아있는 인어공주는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 몇 장을 찍고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며 인어공주의 눈빛을 바라보았습니다. 작고 조용한 그녀의 모습 속에는, 세상에 대한 서글픔과 왕자님을 향한 간절함이 깊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작은 동상이지만 그 눈빛은 너무나 애절하고도 슬펐습니다. 마치 그 바다 너머로 사라진 사랑을 영원히 기다리는 듯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을 향해 끝없는 갈망을 품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가 문득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인어공주는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잃었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내던졌습니다. 그녀는 왕자님과 결혼해야만 영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님은 그녀가 진정 자신을 구해준 인어임을 알지 못한 채, 다른 여인을 향한 미련을 품고 있었습니다. 인어공주는 그 미련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왕자님 곁에서 묵묵히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내가 바라본 그 인어공주의 동상은 마치 그 모든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녀의 작은 몸짓은 수많은 감정을 말없이 표현하고 있었고, 그 시린 바닷바람 속에서 나 또한 그녀의 가슴 아픈 사랑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는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끝까지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인어공주처럼 말입니다. 그녀는 결국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 사랑은 영원히 바다에 남아 파도가 되어 왕자님을 감싸고 있지 않을까요?

겨울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춥고 외로운 날씨 속에서 따뜻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지금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인어공주처럼 깊고 애절하게,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때론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사랑 자체가 우리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날 바닷가에서 본 인어공주의 눈빛은 세월이 많이 흐른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녀가 바라보던 그 바다는 결국 자신의 사랑이 흩어진 곳이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영원히 남을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 겨울,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랑은 비록 끝이 없을지라도 우리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어디선가 멀리서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가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