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세운 조선의 의학체계

조선 의학의 체계를 세운 허준…『동의보감』으로 400년을 넘어 남다조선시대 의관 허준(許浚·1539~1615)은 한국 의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대중에게 알려진 허준의 생애에는 소설과 드라마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도 적지 않다. 역사 기록을 기준으로 보면 허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왕실의 의관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동아시아 의학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동의보감』 편찬을 주도했다는 데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사편찬위원회 자료 등에 따르면 허준은 1539년 태어나 1615년 사망했다. 본관은 양천이며 아버지는 허론이다. 서자 출신으로 당시 신분제 사회의 제약을 받았지만 의술을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허준의 초기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 가운데 하나는 조선 중기의 학자 유희춘이 남긴 기록이다. 허준은 1560년대 말 이미 환자를 진료한 흔적이 확인된다. 이후 내의원에 들어가 왕실 의료를 담당하면서 선조의 신임을 얻었다.허준은 왕실 구성원의 질병 치료를 통해 의관으로서 입지를 높였다. 특히 왕세자의 두창 등 질병을 치료한 공로가 기록돼 있다. 이후 높은 품계에 올랐으며 왕과 왕실을 진료하는 핵심 의관으로 활동했다.1592년 임진왜란은 허준의 생애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전쟁이 일어나 선조가 한양을 떠나 의주까지 피란할 당시 허준도 왕을 수행했다. 전란 속에서도 왕 곁을 지킨 의관으로서 활동한 것이다.허준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결정적인 업적은 『동의보감』이다.선조는 1596년 허준을 비롯해 정작, 이명원, 양예수, 김응탁, 정예남 등에게 의학서를 편찬하도록 명했다. 당시 조선에서 이용되던 의학 지식과 중국 의학서를 정리해 실제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의서를 만드는 국가적 사업이었다.그러나 정유재란으로 편찬 작업이 중단됐다. 이후 선조는 허준에게 다시 편찬을 계속하도록 했다.1608년 선조가 사망하면서 허준의 정치적·관료적 삶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왕의 치료를 담당했던 책임을 이유로 탄핵을 받아 유배됐으며 이후 풀려났다. 허준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의학서 편찬을 계속했다.마침내 1610년 『동의보감』이 완성됐다. 편찬 작업을 시작한 지 약 14년 만이었다. 책은 1613년 내의원에서 간행됐다.『동의보감』은 모두 25권 25책으로 구성된 방대한 의학서다. 내용은 크게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 등으로 구성됐다. 질병과 인체, 약재, 처방, 침구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조선과 중국에서 축적된 의학 지식을 종합했다.특히 우리 땅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와 실제 활용 가능한 치료법을 중요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질병이 발생한 뒤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고 병을 예방하는 양생의 개념도 강조했다.『동의보감』의 영향은 조선에 머물지 않았다. 이후 중국과 일본에도 전해지면서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대표적인 의학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허준은 『동의보감』 이외에도 『언해태산집요』, 『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 등 여러 의학서를 편찬하거나 저술했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보다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글을 이용한 의학서 편찬에도 참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허준은 『동의보감』이 간행된 지 2년 뒤인 1615년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는 정1품의 높은 품계가 추증됐다.허준과 『동의보감』에 대한 평가는 현대에 들어 더욱 높아졌다. 『동의보감』 초간본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으며, 국내에서는 2015년 국보로 지정됐다.허준을 둘러싼 대중문화의 영향 때문에 실제 역사와 허구를 구분할 필요도 있다. 특히 스승과 제자를 둘러싼 일부 유명한 이야기나 극적인 의료 장면들은 후대의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대중화된 내용으로 역사 기록에서 그대로 확인되는 사실은 아니다.역사 속 허준의 진정한 성취는 전설적인 명의라는 이미지보다 기록과 지식을 체계화한 의학자라는 데 있다. 전쟁과 왕조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수십 년간 축적한 의료 경험과 기존 의학 지식을 정리해 『동의보감』이라는 결과물을 남겼다.1613년 세상에 나온 한 권의 의학서는 4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허준이 한국 의학사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남은 이유도 결국 그의 개인적인 의술뿐 아니라 당대의 의학 지식을 후대가 사용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겼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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