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2월,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초연된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초연 당시 실패에 가까운 반응을 얻었다. 그 원인에 대해 명확한 설명은 없었으나, 푸치니는 2막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테너 아리아 ‘안녕, 꽃의 보금자리여’를 추가한 개정판을 선보였다. 이후 3개월 후 브레시아에서 공연된 <나비부인>은 큰 호응을 얻으며 꾸준한 인기를 끌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나비부인>*이 제국주의적 미국 해군 장교를 가해자로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피해자로 묘사된 주인공 초초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며, 일본과 그 문화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오페라로: 복잡한 계보와 푸치니의 선택
<나비부인*의 원작은 프랑스 해군 출신 작가 피에르 로티의 자전적 소설 『국화부인』(188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미국 작가 존 루터 롱이 여동생으로부터 들은 일본 체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비부인』(1898)을 집필했고, 이를 바탕으로 데이비드 벨라스코가 연극(1900)으로 개작했다. 이 연극을 본 푸치니는 오페라로 제작하기로 결심하며, 결국 <나비부인>이 탄생했다.
오페라 속 남자 주인공 핑커톤은 미국 해군 장교로, 일본 여성을 임시 아내로 생각하며 결혼한다. 그러나 이 결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여주인공 초초(나비)는 그의 무책임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다리며 헌신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푸치니는 감동적인 음악으로 풀어내며,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과 서구의 충돌과 융합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본 문화는 일종의 이국적 취미로 인식되었으나,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특히 오페라 <나비부인>은 서구인들이 일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로로 작용했다. 일본 여성의 결단과 명예를 위한 자결 장면은 관객들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으며, 이는 이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의 양면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듯, <나비부인>은 이미 반세기 전 일본인의 명예와 수치심, 그리고 강렬한 결단을 주제로 한 오페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