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7세 고시 금지법

최근 일부 영어유치원 입학설명회에서 ‘최근 3개월 이내 SR 점수, 담임 교사 리포트, 아이의 라이팅과 스피킹 영상’ 등의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평가가 아닌 ‘자료 제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입학을 위한 선별 과정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4세·7세 고시’를 금지하는 법 시행을 앞두고, 사교육 시장이 규제를 우회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유치원은 명칭과 달리 법적으로는 유치원이 아닌 학원에 해당한다. 1990년대 후반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후, 저출생으로 유아 교육기관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현재 전국에 800곳이 넘는 영어유치원이 운영 중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비용 역시 상당하다. 월 평균 160만 원 수준으로, 교재비와 차량비 등을 포함하면 연간 3천만 원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의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내 아이만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 학부모가 자녀를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거나 보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영어유치원은 이러한 불안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아이의 능력과 가능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제공함으로써 학부모의 불안을 키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러한 조기 경쟁 환경이 아동의 정서와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아동 및 청소년의 우울증 및 불안장애 진료 건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사교육 밀집 지역에서 그 증가폭이 두드러진다. 이는 과도한 경쟁과 평가 중심 환경이 어린 나이부터 아이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회는 이른바 ‘4세·7세 고시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은 초등학생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학원이 입학시험이나 수준별 선발을 위한 평가를 실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위반 시 행정처분이 부과된다. 2026년 9월 시행을 앞둔 이 법은 유아 사교육에 대한 첫 본격적인 제도적 규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법 시행 이전부터 우회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낳는다. 학원 자체 시험을 폐지하는 대신 외부 시험 성적이나 영상 자료를 요구하는 방식은 사실상 기존 입학시험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 학원에서는 공인 영어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사례도 등장하면서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촘촘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시행령과 세부 규정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현장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사교육 시장의 과열을 완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도 요구된다. 단순한 규제만으로는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사교육 시장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쟁을 조기에 심화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를 완화하는 일이다. 과도한 입시 경쟁이 지속되는 한, 사교육 시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통로를 찾아낼 가능성이 높다. 유아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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