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사과나무가 가르쳐 주는 삶

5월 초순, 산꼭대기 풀밭에는 조용한 변화가 시작된다. 겨우내 찬바람을 견뎌낸 땅 위로 작은 사과나무 싹들이 얼굴을 내민다. 그 주변에는 풀을 뜯는 염소 떼가 한가롭게 돌아다닌다. 두 해쯤 지나면 어린 나무도 제법 자라 염소들이 건드리지 못할 만큼 커진다. 하지만 문제는 황소들이다. 황소들은 사과나무의 어린 가지를 무척 좋아한다. 한 번 다가오면 가지를 한 뼘씩이나 갉아먹고 만다. 그래서 산속의 야생 사과나무는 무려 20년 가까이 이런 일을 겪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사과나무는 한 가지가 뜯겨 나갈 때마다 두 가지를 새로 돋아나게 한다. 그리고 위로만 자라지 않는다. 옆으로, 옆으로 가지를 넓게 퍼뜨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지들은 점점 빽빽해지고, 마침내 가시까지 돋아난다. 쉽게 다가와 뜯어 먹을 수 없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사과나무는 20년 동안 위로 높이 자라지 않은 채, 옆으로 넓게 퍼지며 조용히 힘을 모은다. 그리고 어느 날, 더 이상 공격받지 않을 중심부에서 어린 가지 하나 둘이 돋아난다. 그동안 넓게 퍼지며 응축해 두었던 생명력을 그 새 가지에 모두 쏟아 붓는다. 어린 가지는 순식간에 위로 치솟는다.

햇볕을 받으며 피어난 분홍색과 흰색 꽃봉오리 및 잎사귀의 근접사진

사과나무가 밑가지들이 만든 보호막 위로 우뚝 자라오르면, 이제 밑에서 버티던 가지들은 제 역할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이전에 나무를 뜯어먹던 소들도 더 이상 해칠 수 없는 높이가 된다. 대신 그들은 우뚝 선 사과나무에 몸을 비비며 그 그늘 아래에서 쉰다. 산꼭대기에서 스무 번도 넘는 겨울 찬바람을 견딘 야생 사과나무는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무 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기도하듯 지켜보던 새들도 그 열매를 먹는다. 그리고 한때 가지를 뜯어먹던 소들까지도 그 열매를 맛본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소들이 열매를 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그 속에 있던 씨앗을 멀리까지 퍼뜨리는 것이다. 발이 없는 사과나무에게 소들은 어느새 생명을 이어주는 협력자가 된다. 야생 사과나무는 20년 동안 자신을 뜯어먹게 하면서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준비의 시간으로 삼는다. 그리고 마침내 열매를 맺어, 자신을 괴롭히던 존재에게조차 기꺼이 나누어 준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 사과나무와 닮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고, 가지가 꺾이는 순간이 찾아올 때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등을 돌린다. 그러나 야생 사과나무는 다르다. 빼앗긴 만큼 더 넓게 가지를 뻗고, 상처 입은 자리에서 더 많은 생명을 키워 낸다. 배척하며 자신의 힘을 소모하는 대신, 원수까지도 품을 수 있는 힘을 천천히 길러 간다. 그래서 결국 더 높이 자라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 5월 초순 산꼭대기 풀밭에서 자라는 작은 사과나무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삶은 때로 뜯기고 상처받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결국 우리의 가지는 더 넓어질 수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그 넓어진 가지 아래에서, 우리를 스쳐 지나간 모든 존재와 함께 열매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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